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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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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희선 지음 - 120*192 - 224p - 13,000원 - 2013년 12월 31일 - 978-89-97835-41-6 (03810) - 031.955.2675(편집) 031.955.1935(마케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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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맛, 매운맛, 신맛…… 여행이 낼 수 있는 온갖 맛에 질려버린 당신이라면 작가 구희선의 여행기가 입맛에 맞겠다. 이 책은 세상의 행복, 기쁨,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근사한 풍경과 엮어둔 착한 여행기도 아니고, ‘세상은 이러이러하니,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하고 목소리를 내는 교훈을 주는 여행기도 아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여행을 ‘툭툭 던져주는’ 여행기이다. 그럼에도 이 여행기의 울림이 큰 까닭은 맛이 담백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행복이나 기쁨, 아름다움으로 제 여행을 수식하려 애쓰지 않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행간에 더하려 하지 않는다. 더하지 않고 뺌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향과 빛, 맛은 더 진해진다. 담백하고 깊은 구희선의 여행기는 맛이 좋다. 베트남 호치민과 캄보디아 프놈펜, 씨엠립, 시하누크빌, 코 롱 삼로엠 섬……. 그녀가 떠났던 1인분의 여행, 그러니까 혼자 떠나는 여행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재미없는’ 것이 아니었다. 딱 한 사람 몫의 여행의 크기를 가졌던 그녀에겐, 여행지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오직 1인분만큼의 여행, 돌보아야 할 ‘네 몫’이 없는 자유롭고 심심한 여행에서 그녀는 마음을 열었다. 함께 곁을 나눌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맞이했다. 여행지의 인연에 커다란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귀한 인연을 밀어내지 않고 오롯이 나 하나를 향해 다가오게 하는 것. 1인분의 여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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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혼자 가면 재미없지 않아?”
친구들은 이렇게 물었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혼자 가도 재밌어.”
하지만 정확히는 이런 대답이 옳았으리라.
“응. 하지만 더 심심해져야 해.”
그들이 말하는 ‘재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재미’에는 치러야 할 값이 있고, 그 값이 나를 또 나가떨어지게 하고 다시 매달리게 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완전히 혼자가 되지 않는 이상, 이 피로한 행보가 계속되리라는 것도. 완전히 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만큼 용기가 있지도, 완전히 혼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어리지도 않았던 나는 1인분의 여행을 떠났다. 온갖 재미로부터 떨어져 마음껏 심심해져야 할 때.
- ‘1인분의 여행’ 중에서 “안녕, 잘 다니고.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감싼 그의 손이 내 등을 지긋이 눌렀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올 테지만 그리고 나도 그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랐지만, 왠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애틋한 마음이 들면 그것은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다. 이미 지나가버려 생각으로밖에 쫓을 수 없는. “안녕, 나도 꼭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정말 우리가 다시 만날 것처럼 얘기했다. “다시는 못 보겠지만” 같은 단서는 달지 않았다. 대신 그의 등을 똑같이 지긋이 눌러주었다. 그도 나에게 아주 작은 위로나마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 ‘안녕, JP’ 중에서 서 호스텔로 돌아와서 호주 청년과 시덥지 않은 얘기를 주고받다가 반달 얘기를 꺼냈다. 딱히 명쾌한 답변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약에 취해 비실거리며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다녔다. 그저 나는 그 달이 계속 너무 어려웠고, 내 앞에 그 청년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주 쉬운 얘기를 하는 듯 말했다. “북반구와 남반구는 달 방향이 반대야.” 그 말이 몹시도 근사해서 나는 좀더 오래 그와 얘기하고 싶었다. 그는 분명 무언가 다른 멋진 말도 알 것만 같았다. - ‘일몰과 반달’ 중에서 그가 다른 얘기를 이어 가는데 나는 자꾸만 그의 얘기보다 억양에 신경이 쏠린다. 마침표를 소리로 만든다면 꼭 저럴 테지. 말의 꼬리가 단단하게 뭉쳐져 꾹, 하고 짓눌린다. 알파벳의 부드러움은 그의 입천장에 부딪혀 꺼칠한 돌기가 된다. 그가 하는 말은 무지 중요한 얘기같이 들리다가, 또 무지 시시한 농담같이 들린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니 러시아. 와, 러시아 사람은 처음 만나본다는 말에 자기도 한국 사람은 처음이라며 방긋 웃는다. 뭐야, 웃으니까 되게 착해 보이잖아. - ‘카페, 느와르’ 중에서 그는 자신이 묵었던 호텔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얘기했다. 네모반듯하게 접힌 수건에서 풍기는 섬유 유연제의 향, 사붓이 살결에 닿는 하얀 면 이불의 차가운 온도, 발바닥을 기분 좋게 받쳐주는 슬리퍼의 단단하면서 말랑한 강도 같은 것들을 상상해본다. 여행 얘기를 하는 그의 표정은 소풍 갔던 얘기를 조잘거리는 소년 같기도 하고, 넉넉하게 노후를 보내는 노인 같기도 해서 때론 엄마처럼, 때론 손녀처럼 그의 여행 얘기를 들었다. - ‘여행 이야기’ 중에서 “곧 석양이 진다. 보고 가. 어차피 지금 가봐야 터미널에서 시간 때워야 하잖아. 툭툭 잡아서 터미널까지 바래다줄게.”
우리는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석양을 봤다. 너랑 좀더 일찍 만나서 같이 여행을 더 했다면 재밌었을걸. 그가 농담처럼 얘기했다. 그러게. 나도 너랑 있는 게 좋았는데. 나도 농담처럼 얘기했다. 붉어진 석양 위로 축축한 보랏빛 어둠이 꽤 많이 번져갈 때까지 우리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며 해변에서 맥주를 마셨다. 툭툭이 터미널까지 미친듯이 빠르게 달려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서.
- ‘땡큐, 슈가대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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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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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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