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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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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선명 지음 - 135x185 - 256쪽 - 12,800원 - 2014년 6월 27일 - 978-89-97835-57-7 (03980) - 031.955.2675(편집) 031.955.1935(마케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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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전선명의 프라하 ‘생활 여행’ 에세이. 애니메이션 감독인 남편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체코 프라하로 떠나, 1년 넘게 머물며 프라하 곳곳을 누빈 기 록들을 담았다. 일러스트 작가와 애니메이션 감독 부부의 생활 여행답게 벼룩시장, 잡화 점, 헌책방, 인형극장, 문방구 등 체코 특유의 문화 공간에 대한 탐미가 잘 드러난다. 찻 잔, 인형, 문구에서 풍겨오는 동유럽 특유의 오래된, 느린, 빛바랜 느낌이 빚어내는 아스 라한 분위기가 이 책 안에 잘 녹아 있다. 그들의 여행은 화려한 관광은 아니지만, ‘동유 럽’이라는 이름의 정서를 기록해내기에 충분한 ‘일상 여행’이다. 이방인에서 시작해 여행 자처럼, 생활인처럼, 학생처럼, 예술가처럼 프라하를 겪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생활하고 살아감으로써 성장하는 저자의 에세이는, 타지에서의 일상을 극복해 나가는 성취감과 외로움 등 미묘한 감정 변화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선사함으로써 여행서 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간접 경험’과 ‘대리 만족’의 기능을 톡톡히 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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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이라는 이름의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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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프라하 4지구 언저리를 산책했던 어느 더운 날, 마침내 트람바이 정류 장에 도착해 나무 그늘의 고마움을 실감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트람바이가 나를 향해 느릿느릿 미끄러져 오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 행복하다’ 하고 속으로 읊조리는 순간, 정류장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Na Veselí’. ‘행복에서’라는 뜻이다. 정류장 이름 이 ‘행복에서’라니, 괜스레 두 배는 행복해지는 기분. 내가 좋아하는 체코 단어 중 ‘Medvěd’라는 것이 있다. ‘곰’을 뜻하는 이 단어에는 ‘꿀’이 라는 뜻을 가진 단어 ‘Med’가 숨어 있다. 곰이 꿀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가 된 것 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이마를 탁 치며 웃고 말았다. 또하 나, 체코어로 일요일은 ‘nedeli(네뎰레)’라 하며, 직역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란다. 일요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쉬고만 싶은 날이니, 이처럼 당연하고 알맞은 표 현이 또 있을까 싶다.
- 1 프라하의 여행자처럼 ‘체코어의 맛’ 중에서 묘하게도 이들의 일러스트에서는 말로 콕 집어 표현하긴 어려웠지만 옛 동유럽 정서가 느 껴졌다. 특히 리소그래피 방식을 포함한 판화들은 완성도가 무척 높았는데, 알고 보니 학 교 내부에 오래된 인쇄 공방이 있어서 학생들이 직접 인쇄 및 제본을 한다고. 이어서 들 여다본 ‘그래픽 디자인과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아틀리에에는 서체타입을 이용해 프린팅 한 커다란 포스터들이 벽면 높은 곳까지 붙어 있었는데, 정말 강렬했다. 특히 선명하고 명확한 그래픽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포스터들이 더욱 돋보이게끔 벽면을 보라색으로 칠 한 것이 신선했다. 작업 자체의 완성도보다는 참신한 시도와 더불어 공간까지 함께 작품 에 포함시킬 줄 아는 감각이 감탄스러웠다. 핑계에서 벗어날 자극제를 드디어 만난 것이 다. 프라하에 와서도 좀처럼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날 저녁, 비로 소 ‘시작’이란 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작’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2 프라하의 생활인처럼 ‘프라하응용미술대학 오픈데이’ 중에서 서 시간은 흘러 크고 묵직한 이젤에 종이를 익숙하게 걸치고, 이젤을 이리저리 움직여 위치 를 자유로이 바꾸는 요령도 익혔을 즈음 수업도 끝날 시점이 다가왔다. 선생님들은 매일 그림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평가해주고, 단계를 정해놓고 점수도 매기고 결과물이 좋은 날 엔 단계를 올려주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좋은 말을 들은 날엔 신이 나서 그날 그린 그림 을 둘둘 말아 집에 갖고 가 남편에게 자랑을 하곤 했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깊이 집중한 사람들, 사각사각 목탄 움직이는 소리가 침묵 위로 미끄러지는 시간, 모델을 바라보며 고민을 거듭하는 눈동자 들, 그렇게 모델과 이젤 그리고 자기 자신만 존재하는 듯한 공간에선 절로 생각의 심연에 빠져들게 된다. 골똘히 집중하면서 저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는 느낌에 나도 모르 게 젖어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내 안에도 하나둘 생각의 소리가 울리기 시 작했다. 이 조용한 여름수업은 뜨개질을 하거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사색의 들판을 담담 하게 이리저리 거닐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 3 프라하의 학생처럼 ‘여름 데생 교실’ 중에서 어린 시절, 틈만 나면 동네 문방구에 들러 신상품을 샅샅이 살펴보는 것은 내겐 정말이지 아주 중요한 일과였다. 그래봤자 가질 수 있는 것은 어설픈 캐릭터가 그려진 공책 한 권, 책받침 하나, 지우개 하나 정도였지만, 결정을 내리기까지 마음속으로 얼마나 고민을 거 듭했던지. 돌이켜보면 긴장감 넘치는 선택의 순간이었다. 나에게 문방구는 요즘의 화려한 테마파크 못지않은 놀이터였다. 그래서일까? 프라하에서 처음 문방구를 발견했던 날, 난 추억이 내미는 손을 덥석 붙잡고 홀리듯 들어가고 말았다. ‘파피르니츠트비Papírnictví’, ‘문방구’란 뜻이다. 이제는 어딜 가나 대형 화방이나 마트에서 문구류를 쉽게 살 수 있지 만, 프라하에는 다행히도 작고 정겨운 문방구들이 제법 남아 있다. 사회주의 시절 동유럽 에서 생산된 문구들에는 그 당시 사회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공책은 거칠기 짝 이 없고, 지우개는 잘 지워지지 않고, 볼펜 잉크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지만, 종이의 투 박한 질감, 초점이 어긋나게 인쇄된 책 표지 등은 보면 볼수록 너무 어설퍼서 오히려 더 정이 간다.
-4 프라하의 예술가처럼 ‘문방구에 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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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_프라하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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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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