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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미술무크지
debut 4

미래적 사유의 출발은 변화가 아니라 ‘회복’에 있다. 미술은 세상을, 우리를 ‘회복’시켜야 한다.


 

 

 

 

 

 

    - 윤동희, 문장현 엮음
- 150*240mm
- 240쪽
- 15,000원
- 2015년 3월 10일
- ISBN 978-89-97835-95-9 04600, 978-89-968068-7-5(세트)
- 031.955.2675(편집) 031.955.1935(마케팅)
         
 

어제와 오늘의 작가를 표지 삼아 ‘내일의 작가’가 되고 싶은 미술대학 학생들과 젊은 미술인들에게 필요한 시각문화 콘텐츠를 담는 미술무크지 [debut(데뷰)] 4호가 나왔다. 북노마드 미술학교에서 열렸던 작가들(이지현, 정보영, 이은실)의 강의, 자신만의 신선한 관점과 감수성으로 무장한 젊은 작가들(임영주, 노승표, 정덕현, 정재원, 송보경)의 인터뷰 등 미술 현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가 눈길을 모은다. 작가들과 함께 호흡하는 큐레이터(김장언, 현시원)와 평론가(임산, 김신식)의 새 연재물 역시 미술과 시각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깊이를 더해준다. .

 




출판사 서평


북노마드가 만드는 미술무크지 [debut]에 변화를 주었다. 1년에 한두 차례 발행하던 것에서 좀더 자주 펴내기로 했다. 힘든 출판 상황에서도 미술무크지를 굳이 만드는 이유는 ‘나쁜’ 미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인간은 병든 짐승”(헤겔)이라는 표현을 좋아했듯이, ‘병든 미술’을 보고픈 바람이 우리에겐 있다. 이 말은 동시대 미술에 대한 비관의 표현도, 건강한 미술에 대한 동경도 아니다. 그것은 ‘나는 길들지 않는다’라는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선언과 같다. 평화로운 삶에 만족하고 생식에서 구원을 구하는 ‘나쁜 짐승’으로서의 인간이 만들어내는 ‘착한’ 삶이 아니라, 죽음과 고통을 포함한 자신의 운명을 ‘의미’로 바꾸는 능력을 지닌 ‘나쁜’ 미술에 대한 동경이 미술로부터 떠나지 못하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술은 젊음을 죽이는 자들에 대항하는 나쁜 미술이어야 한다. [debut]가 그 전선에 미약하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debut]는 그 ‘태도’를 잃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다시 ‘태도’다. “태도가 형식을 만들어낸다”는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46년 전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야신(野神)’으로 불리는 김성근 감독(한화 이글스)이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스즈키 이치로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태도’였다. 이치로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선수, 일본에서 뛰건 메이저리그에서 뛰건 ‘멘털’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 김성근 감독의 ‘이치로 론(論)’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치로는 야구에 모든 걸 걸었다. 다른 선수들이 결과를 쫓아다닐 때 그는 과정을 보았다. 그는 안타를 때리든 삼진을 당하든 문제 삼지 않고, ‘자기’ 스윙을 했는가를 가장 중시했다. 이치로는 긴 호흡으로 야구를 즐겼다. 그렇기에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도 기복이 없었고, 삼진을 당해도 억울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고, 안타를 쳐도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포커페이스. 눈앞의 ‘현실’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와 너무도 다르다. 기준은 바로 자기(自己).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것이 그에겐 가장 중요했다. 스무 게임 연속으로 안타가 나오지 않던 때에도 이치로가 불안해하지 않았던 것은 자기는 제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지 안타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뿐. 반대로 이치로는 연속 안타 신기록을 내고도 불만을 토로했다. 안타를 쳐도 과정이 내 것이 아니면 불만스러운 것, 그것이 바로 프로의 자세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고 내뱉는 모든 불평들은 실은 미술과는 상관없는 얘기라는 걸. 야구건, 미술이건 결국 ‘내’가 하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평가에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을 하는 자가 많아져야 한다. 우리는 좀더 ‘고독’해져야 한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전시라는 이름으로, 무소불위의 이미지 접합을 무차별적으로 행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막스 피카르트의 말이 그립다. 인간은 가려진 말 앞에서 머뭇거린다. 인간은 가려진 말이 스스로 정체를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의 고독 혹은 몰입이 가장 아름답다.

결국 고독한 미술이란 자기(自己)에게로 돌아가는 미술일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정신문화와 동시대 미술의 빈곤과 공허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를 고민하는 미술일 것이다. 그저 정보(information)만 남발하는 데이터(data)를 양산하는 미술이 아니라, 어떤 정신의 깨달음으로 입문(initiation)하는 길을 사유케 하는 그런 미술일 것이다. 오해 마시라. 미술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debut]는 변화라는 거창한 구호가 아닌 ‘회복’이라는 근원적인 바람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쪽에 서 있다. 세상은 변해지는 대상이 아니라, 회복되어야 하는 시원적인 사실이라는 말에 위안을 받는다. 미래적 사유의 출발은 변화가 아니라 ‘회복’에 있다. 미술은 세상을, 우리를 ‘회복’시켜야 한다. [debut] 4호에 동참한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들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해요. 그림이 너무 잘 그려지면 타성에 젖어서 그저 ‘그리기’만 할 수 있어요. 작업이 아무렇지도 않게, 즉 너무 편안하다면 그걸 불편하게 생각해야 해요. 그 지점에서 작가로서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저는 “작가로 사는 것이 불안하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나요?”라고 되묻고 싶어요. 제가 아기를 뱃속에 품고 물감을 멀리하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절, ‘이러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쉬움과 상실감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다시 그릴 수 있는 상황을 감사해하며 더 열심히 그리게 되었어요. 오늘 강연 제목을 정하는 것이 전시 제목을 정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거든요. 결국 고민 끝에, 작가에게는 생활이, 그러니까 사는 얘기가 곧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이지현 ‘작가 이지현이 사는 법’ 중에서


보통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이 소재를 선택하고 이걸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작업에 들어가는데요. 어떤 확신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당연히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죠. 그 고민을 손으로 해결하는 게 중요합니다. 고민은 반쯤 접어두고 많이 그리는 게 중요해요. 내가 왜 이리 힘들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리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그래, 손해 보는 셈 치자’ ‘내가 좀 미치긴 했지’라는 생각으로 다작을 했어요. 어떤 그림을 봤을 때 이게 그림인가 싶은 그림도 있잖아요. 이런 그림들도 스무 점 정도를 모아두면 얘기가 되거든요. 개인전을 하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어요. 다작을 해서 보여줘야만 자신만의 어떤 조형 언어를 만들 수 있고 거기서 한 단계 또 나아갈 수 있는 거잖아요. 다작을 한다는 게 참 중요합니다.

- 정보영 ‘채움과 비움, 공간을 그리다’ 중에서


내가 대안공간의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을 때, 지도교수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왜 자신의 일과 공부 그리고 삶을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나요?” 우리는 늘 분리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이 미덕인 시절도 있었다. 결합은 단순히 어긋난 그 지점을 다시 붙이는 것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분리된 지점의 상처와 흔적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것이다. 결합은 어쩌면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그 결합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 김장언+이수성, ‘작업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 중에서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예술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감정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와 예술/예술가의 사회학적 전기와 주석을 풍성히 달려고 한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당신이 이상하리만치 야릇하고도 특별하게 느껴온 감정이 지워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당신 옆에서 조잘거리고 있는 그 사람의 감정을 먹어버리자. 그리고 잠자코 일단 좀 보자고 이야기하자. 예술작품을 마주하면서 예술작품을 둘러싼 사회학적 정보를 가득 담아온 이에게 느껴지는, 작품과의 첫 만남에 그 심층을 이미 장악하고 있다는 듯한 마음은 예술작품의 주석도, 예술작품을 대하는 이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주석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주석을 달고자 애쓰는 평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이미 이야기되었다는 슬픔이다. 그러했을 때 예술을 향한 감정사회학의 임무는 전환, 탄생, 변혁이 아니라 분신과 희생일 것이다.


- 김신식 ‘감정을 먹다 _예술, 감정 그리고 사회학’ 중에서
 




차례

editorial
‘회복’하는 미술_ 윤동희


art & sight
2014 광주비엔날레 / 2014 부산비엔날레 / 미디어시티서울 2014


New Artist
전통적인 풍경화의 목적과 의미를 묻고 싶습니다_ 정재원


New Artist
마음속 어떤 물음 그리고 울음_ 송보경


editorial
‘회복’하는 미술_ 윤동희


a. school
작가 이지현이 사는 법_ 이지현


a. school
채움과 비움, 공간을 그리다_ 정보영


a. school
우리는 왜? 나는 왜?_ 이은실


Curator+Artist
작업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_ 김장언+이수성


yBa
상대방의 사유에 균열을 내는 미술, 누군가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예술_ 노승표+정덕현


yBa
미술, 나에게 허락된 만큼의 오해 덩어리_ 임영주


art & critic
뭐가 안 보이는지 보려고 _ 구동희 〈밤도둑〉_ 현시원


art & sociology
감정을 먹다 _ 예술, 감정 그리고 사회학_ 김신식


art & book
뉴미디어 시대, 확장하는 큐레토리얼 실천에 대한 조망_ 임산

 




엮은이

윤동희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월간미술] 기자, 안그라픽스 편집장,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noon]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북노마드’ 대표, 세종대 회화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문장현

홍익대와 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 디자인사업부 부사장을 거쳐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제너럴그래픽스’ 대표로 일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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