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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
Pourquoi Philosopher?

사실 말해서, 어떻게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있답니까?


 

 

 

 

 

 

    -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지음
- 이세진 옮김
- 이성근 감수
- 125*200
- 176쪽
- 12,000원
- 2015년 7월 24일
- 979-11-86561-07-2 (03100)
- 031.955.2675(편집) 031.955.1935(마케팅)
         
 

우리 시대의 사상가,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소르본 대학 강연을 책으로 만나다!
철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쉽고 명료한 언어로 설명하다
리오타르의 사상과 태도를 기록한 코린 에노도의 해제 수록!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는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소르본 대학 신입생들을 위해 준비한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을 위해 명료하고 쉬운 언어로 쓸모없는 또는 한물간 학문처럼 보이는 철학을 왜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리오타르는 플라톤, 프루스트, 라캉의 사상을 실마리로 삼아 철학의 의미를 검토한다. 두번째 강연에서는 우리가 철학을 하고자 하는 욕망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살핀다. 세번째 강연에서 리오타르는 소통에 대한 통념 혹은 편견을 비판하며 철학의 욕망의 의미를 검토하는 철학의 말함/말하기/말하는 행동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마지막 강연에서는 철학의 쓸모와 소용을 검토한다. 말하기가 그 말의 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행동 역시 마찬가지이고, 결국 그 근저에는 욕망이 있다고 정리한다. 그것이 바로 철학하는 이유이다.

 




출판사 서평


한 시대 안에서 그리고 그 시대 이후에 철학‘한다’는 것 - 리오타르의 『왜 철학하는가』에 바치는 한 줌의 글귀

- 이성근 / 철학,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지은이

“왜 철학하는가?”라는 굉장히 커다랗고 어려운 질문을 다루는 책이 나왔다. 우리가 거쳐 온 오랜 말의 역사에서 확고히 고정된 ‘왜’라는 의문사와 이 의문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철학’이라는 무거운 말의 연결을 다루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더구나 한국어에서 육하‘원칙’이라는 단단한 이름으로 전해지는, 세상의 많은 말들 중에서 없어지지 않을 저 의문사에 대한 답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더불어 저 의문과 함께 등장했을 ‘철학’ 역시 누구에게나 만족을 주는 쉽고 간단한 정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가기 전에 먼저 개인적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믿는 혹은 그마저도 잊혀가고 있는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라는 고유명사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굳이 이유를 더하자면, 이 고유명사의 무게가 이 책에 대한 접근을 오도하거나, 잘못된 선입견을 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책에 접근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이 책이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저 고유명사에 따른 어떤 선이해가 개입하지 않기를 감히 ‘욕망’한다.

덕분에 이 책에서 가장 감사했던 부분은 리오타르의 딸인 코린 에노도가 작성한 이 책의 성립과 논의의 진행에 대한 일종의 소개였다. 한 ‘철학자’에 대한 어림짐작을 확신으로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기록들과 전해지는 이야기들로만 어림짐작했던 이 ‘포스트모니즘의 사상가’는 ‘작은 이야기’에 매료된 채, ‘거대 담론’ 즉,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무작정 내쳐버리는 이가 아니었다. 리오타르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그녀의 위치를 이해하더라도, 에노도가 전달하는 리오타르의 모습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더구나 에노도가 그려내는 리오타르는 결코 자기 고유의 생각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철학한다’는 행동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시대와 함께 현상학, 정신분석학, 헤겔-마르크스로 이어지는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호흡하려는 이 자세, 이것이 결국 리오타르가 말하고 싶어하는 철학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는 결코 ‘플라톤’ ‘칸트’ ‘후설’이라는 이름들을 역사로의 철학과 담론의 장에서 상대화하고 해소시켜버리는 자세가 아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상대주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론의 ‘기원’으로 언급되는 이와는 어울리는 태도가 아닐 것이다.

길기는 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리오타르와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해 한 이야기는 이 책이 다루는 직접적인 주제들로부터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직접 다루는 네 개 강의의 주제가 바로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욕망’ ‘역사 또는 기원’ ‘말’ ‘행동’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결코 이 네 말들의 그물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말을 덧붙이고 싶은 것은 바로 욕망 아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철학한다는 것 또는 그로부터 나타나는 철학과 ‘행동’의 관계이다.

철학한다는 행위가 어떤 욕망의 산물임에는 십분 동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것은 리오타르가 행동의 필요성을 욕망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이 ‘결여’에 근거를 두는 ‘부정적’ 방식이라는 점이다. 라캉을 경유하여 욕망에 접근하는 이유이겠지만, 과연 우리는 욕망을 충만하게 긍정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을지 다시 한번 돌아본다.

다행히 리오타르는 다시 전통적인 질문을 던지며 큰 그림 아래 답을 예비한다. “따라서 “이제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더는 꿈꾸지 않아도 되게끔 — 나는 ‘철학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이라고 하고 싶군요 — 현실을 수정하고 삶을 바꿔야 한다는 뜻입니다.”(본문 130쪽) 그러므로 여기에 닿는 그의 마지막 반문 “어떻게 철학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다른 답을 부른다. 이는 진정한 근대 이후의 사상가일 니체라면 “누가 철학하기를 바라는가?”라고 변주했을 질문을 경유하는 여전히 진행중인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철학하고 있는가?”

* 글을 쓴 이성근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철학과,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공저) 등이 있다.

* 출판사 북노마드는 책에 대한 깊이 있고 객관적인 소개를 위해 외부 전문가에게 서평을 의뢰했습니다. 북노마드는 책을 덮은 후의 느낌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본문 중에서


철학의 삶과 죽음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리에게 철학은 있기도 하고 동시에 없기도 합니다. 어쩌면 철학의 존재의 비밀은 이 모순적이고 대조적인 상황에 있는 듯합니다. 철학하는 행위와 현존-부재 구조의 우연적 관계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다소 앞서가는 감이 있지만 욕망(desir)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철학(philosophie)에는 사랑한다는 것(philein), 즉 ‘좋아하다, 욕망하다’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해지는 순간에 다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느껴졌어.
- ‘1. 왜 욕망하는가?’ 중에서


헤겔은 젊은 날의 저작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체계의 차이』(1801)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통합하는 힘이 인간들의 삶에서 사라지고 대립들이 그러한 관계와 생생한 상호작용을 잃어버리고 자율성을 획득할 때, 바로 그때 철학에의 욕구가 탄생한다.” “왜 철학을 하는가?”라는 우리의 물음에 완전히 명쾌한 답이 주어졌군요. 통일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철학의 욕구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철학의 기원은 일자(一者)의 상실, 의미의 죽음입니다. 다만, 일자, 즉 통일성은 왜 상실되었을까요? 어째서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자율성을 띠게 되었을까요? 어쩌다가 통일성 속에서 살아가던 인류, 헤겔이 같은 단락에서 말했듯이 의미작용을 하던 인류가 그 의미를 잃게 되었을까요? 인류에게 세계와 자기 자신은 분명히 어떤 의미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어디서, 언제, 어떻게, 왜?
- ‘2. 철학과 기원’ 중에서


우리는 언제나 참에 준거해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들의 사이와 우리 안에도 있는 사물들과 세계 속에서 잠재적 의미는 말을 잠식하고, 분절되는 의미를 지탱하고, 그 의미를 이끕니다. 그러나 어떤 간격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너머, 우리의 ‘의식’ 너머에 전적인 현실을 잡아놓기 때문에 우리는 참에 거하지 않습니다. 사유는 행동이라는 관점에서 - 꼭 그런 관점이 아니더라도 늘 그렇지만 - 이미 사유된 것, 이미 수립된 분절화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기표와 기의를 분리하는 모든 것과의 투쟁, 욕망이 말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것과의 투쟁입니다(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말과 권력은 이 투쟁의 수단이고요.
- ‘4. 철학과 행동에 대하여’ 중에서


여러분은 욕망, 현존-부재의 법칙, 채무의 법칙을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피난처도 찾을 수 없을 것이며 행동은 안식처가 되기에 어림없습니다. 행동은 그 어떤 명상보다 더 노골적으로 여러분을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 행해져야 하는 것을 명명할 책임과 맞닥뜨리게 할 겁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세계 안에서의 잠재적 의미작용을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기록하고 듣고 옮겨 적을 책임을 느끼게 될 거예요. 세계에 귀를 기울임으로써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철학이 노후한 장식품, 양갓집 규수의 소일거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철학은 그런 것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그래도 철학이 현실 속의 욕망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점, 혹은 그런 순간일 수 있다는 점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나 겪는 결핍이 명명되는 동시에 변화되는 순간 말입니다.
- ‘4. 철학과 행동에 대하여’ 중에서


철학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욕망이 있기 때문에, 현존 속에 부재가 있기 때문에, 생체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또한 아직 권력이 아닌 우리의 권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소외되고 상실됨으로써 사태와 행위, 말해진 것과 말하기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을 통하여 결핍의 현존을 증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말해서, 어떻게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있답니까?
- ‘4. 철학과 행동에 대하여’ 중에서
 




차례

왜 철학을 하는가?

1. 왜 욕망하는가?

2. 철학과 기원

3. 철학의 말에 대하여

4. 철학과 행동에 대하여

해제 / 리오타르에 대하여

 




지은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1970년대 초부터 1989년 명예교수로 퇴직할 때까지 벵센 대학과 생드니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현상학자 후설에게 영향을 받은 『현상학』을 시작으로 지적 활동을 이어나갔다. 알제리 해방운동 지지자로 활동하면서 1955년부터 1966년까지 사회주의 경향의 잡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와 신문 《노동자의 힘》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68 혁명’을 겪은 뒤 『담론 현상』 『리비도 경제』 『분쟁』 등의 저작을 발표했다. 1980년대부터 『근대 이후의 조건. 지식에 관한 보고서』 『지식인의 종언』 등으로 근대 이후의 동시대의 상황을 전망하고 고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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