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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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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숙진(할머니), 윤여준(손녀)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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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미래의 나를 찾게해준 사람들은 이상하다. 자기 자신, 혹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인다. 누구보다 소중한 ‘나’와 ‘우리’ 이야기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때, 우리 할머니』는 동양화와 미술사를 공부한 25세 손녀가 89세 할머니의 시간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사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나’ 혹은 ‘우리’가 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80여 년 전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보다 조금 빨리 이 세상을 살고 있는 한 여성의 삶의 기억이다.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역사가 있다. 그녀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의 또다른 모습이 담겨 있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역사가 아닌, 개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역사가 있다. 할머니가 전해주는 지난날의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에게 공감하지 못했던 과거의 사건에 우리를 가까이 데려가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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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그때그때 재미있는 일을 하며 지내는 윤여준입니다. 요즘은 이야기를 듣고, 쓰고, 읽고, 말하고, 그리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정숙진의 손녀입니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내’가 있다고 썼는데요, 정말 그랬어요. 할머니께서는 가족이 모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가족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자연스레 제 삶을 반추하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당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을 뿐인데, 저는 그 이야기에서 저를 찾고, 어느 날은 위안을 받고, 어느 날은 배움을 느끼고, 어느 날은 공감했어요. 그렇게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고, 시간이 지나도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책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누군가의 손녀, 손자, 딸, 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결국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데요. 우리는 좋든 싫든, 함께하든 부재하든, 기억하든 기억에서 사라졌든 누군가의 딸 혹은 아들일 테고, 또 누군가의 손녀 혹은 손자일 테니까요.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본인의 누군가를 떠올리고, 전화 한 통 걸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면 해요. 저는 커다란 거대서사보다 작고 평범한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여요. 그런 점에서 독립출판이 흥미로웠어요. 독립출판물은 기성출판에 비해 내용도 형식도 소소하고 자유로우니까요. 독립출판은 ‘전문가’가 쓴 ‘특별한 이야기’만이 책으로 이어지는 줄 알았던 저에게 경험이 없는 ‘저와 할머니’가 평범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요. 독립출판물이 한 개인의 기록을 통한 자기만족에 머무르지 않고 작지만 강하게 기능했으면 해요. 저 역시 『그때, 우리 할머니』가 평범한 개인 이야기이지만 강한 울림을 지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 되었으면 합니다. - 할머니의 일기를 통해 ‘결국 소중한 것은 일상 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무엇을 느꼈나요? 책을 만들며 좋았던 점은 할머니와 더욱 긴밀해졌다는 거예요. 책이라는 기분 좋은 핑계로 할머니와 자주 교류했고, 이전에는 몰랐던 할머니를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를 가까이서 바라보며 ‘할머니의 세상을 향한 시선’이 그녀의 행복한 삶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꼈어요. 할머니의 시선은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할 것에 감사할 줄 알며, 일상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아요. 이러한 할머니의 시선은 제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에너지가 되었어요.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 힘이 쭉 빠지는 이야기를 듣고 우울해하다가도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이야기를 들으면 기운이 솟아나요. 세상은 암울하지만 소중한 것이 있고, 감사한 것이 있고, 일상 속에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 할머니께 ‘인쇄된’ 첫 책을 드릴 때 단아한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편지를 써서 드릴 것만 같아요. 이 자리에서 그 편지 내용을 살짝 공개해줄 수 있을까요? 책을 만들며 할머니께서 꽃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책이 나오면 오랜만에 예쁜 꽃을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손녀가 드디어 책을 냈으니 할머니표 맛있는 궁중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달려갈 거예요.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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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88세가 되던 지난해, 외손녀 여준이가 할머니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신혼 시절 등 살아온 삶의 얘기를 듣고 미술작품과 책으로 기록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구순을 앞둔 나이인데 머릿속에 무슨 기억이 남아 있을까? 뇌세포는 하나하나 죽어가고 있는데. 자신은 없었지만 용기 내어 인터뷰를 승낙했다. 그렇게 나는 88년 전으로 돌아가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여준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모여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됐다. 이를 계기로 잊고 있었던 나의 지난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중략) 이제야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인생이건만 몸이 내 맘 같지 않아 서글프다. 존경을 받고 감동을 줄 만한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도 부끄럽고 아쉽다. ‘그러나 지금 나는 행복하다!’ - ‘할머니의 글’ 중에서 하지만 작은 바람은 있다. 그저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책을 덮은 후, 당신의 할머니가 혹은 당신의 어머니가 처음부터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아니었음을, 그녀들도 우리와 똑같이 소중한 인생사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에게 전화 한 통 걸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그걸로 좋다. 책을 마무리하며, 엮은이의 글을 쓰는 동안 몇 번이고 눈물이 차올랐다. 집으로 향하며 할머니께 - ‘손녀의 글’ 중에서 오늘은 날도 개고 공연히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11시 30분, 당신의 글을 손에 확실히 받았습니다. 어찌도, 어찌도 반가운지 미칠 것 같았지요. 당신의 손을 대하는 듯한 촉감! 가슴은 고동, 손은 진동, 눈시울은 눈물. 더 형용할 수 없습니다. 오직 기쁠 뿐, 그렇게 나를 기뻐해주실 글월을 이제야 주시는지, 원망이 더욱 컸지요. 흐르는 눈물을 억누르고 한 자 빠짐없이 읽고 또 읽었습니다. 불편 없이 무사히 계시다니 더욱 반갑습니다. 그동안 퍽이나 분주하셨든 양 당신의 매일의 생활이 목전에서 보는 것 같습니다.마치 주마등과 같이 국진이가 학교에 가고 종이가 있는 곳을 몰라 찾다가 여기에 그냥 계속합니다. 용서하세요. 매일 저녁 찾아오는 miss와의 저녁 거리 산보. 방 안에서의 유희. 10시까지 중동 거리를 방황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그릴 때 무한히 행복스러우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짜증내는 혹이 없을 때 마음껏 즐기시지요. 차후에 후회가 없으시도록. 그러나 열이 과하면 발광이 생기니, 지나치게 즐기시고 귀가 후 추방은 당하시지 마시도록. 후일을 참작하여 적절히 소일하심이 어떻습니까. 은근히 질투가 나서요. 호호……. - ‘할머니의 연애편지 - 편지 둘’ 중에서 언제였나……. 막내가 갑자기 나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 그때 막내가 우연히 내가 쓴 시와 글을 보고는 한마디 하더라고. ‘엄마는 왜 선생님도 그만두고 아버지 인생을 따라 살고 있느냐’ 하면서. 그 이야기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잖아. 왜 그랬을까? 이미 세월은 흘러갔고, 내 뜻을 이루고자 하는 용기도 없고……. 나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여 자식들의 꿈을 응원해주자고 생각했지. - ‘그 이야기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잖아’ 중에서 요즘은 어떻게 사느냐고?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는 대로 내버려두라. 지금이 중요하다.’ 이 문구를 어디선가 보고 실천중이란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조금 더 지혜롭게, 보람 있게, 베풀며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이제 아흔이 가까워 오니 육신의 연약함도 느끼지만 그 아픔의 과정을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여정이라고 믿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지내는 중이야. 네가 보기엔 어떠니, 할머니 잘 살고 있는 것 같니? 허허. - ‘요즘은 어떻게 사느냐고?’ 중에서 89세라는 생의 문에 입성했다. 주님 곁에 갈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짐을 새삼 느낀다. 나이가 많다고, 기력이 없다고 손을 놓고 먼 산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할 일이 많다. 아직은 볼 수 있는 눈을 주셨으니, 말씀을 하루에 한 시간씩 읽어야지,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으니 아름다운 음악도 들어야지. 자식들과 재미있는 이야기 나누어야지. 또 맛있는 것 사주면 기쁨으로 맛있게 먹어야지. - ‘할머니의 일기 - 1월 2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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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글 촐랑촐랑 1928-1942 - 어린 시절, 보통학교 다닐 적에 종종 1946-1950 - 우리 때 대학교 생활 몰래몰래 1951-1952 - 조심조심 시작한 연애 삐뚤빼뚤 1954-1965 - 커가는 우리 아이들 지은이 정 숙 진 동네를 거닐다가 담장 밑에 외롭게 핀 들꽃을 보면 저절로 걸음이 멈춰지는, 마음만큼은 아직도 소녀인 89세 할머니이다. 일제강점하인 1928년, 4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의사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풍요롭고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경기여고 4학년 때 8.15 해방을 맞이했고, 이화여자대학교 가정과를 졸업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6.25사변이 터져 대구로 피난을 갔다. 피난생활 중에 대학 은사님의 추천으로 대전여고 가정과 교사로 부임했다. 대전여고에서 평생의 동반자인 구본정 선생을 만나 1952년 11월 화촉을 밝혔다. 첫 딸을 가지면서 교직을 떠났고, 이후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살았다.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다. 교사였던 남편의 전근에 맞춰 대전, 공주, 서울, 양촌 등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남편이 정년퇴임한 1998년부터 현재까지 대전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다. 윤 여 준 그때그때 재미있는 일을 하며 지낸다. 요즘은 이야기를 듣고, 쓰고, 읽고, 말하고, 그리는 것을 즐기고 있다. 1992년 4월 1일 만우절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유치원이 끝나면 향하던 어머니의 미술학원에서 미술학도의 꿈을 키웠다. 선화예술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미술을 전공했고, 선화예술고등학교를 거쳐 2011년도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기억과 기록, 미술과 텍스트 사이를 고민하며 대학생활을 하였고, 2016년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하여 현재 재학중이다. 최근 <여준회관>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으며, 이를 통해 이야기를 관찰하고 수집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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