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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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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강형준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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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여성혐오, 세월호, 비정규직, 대중인문학, 갑질, 흙수저… 《한겨레》에 연재된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의 문화비평 칼럼을 모은 『감각의 제국』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에서는 2015년 11월 27일부터 2016년 6월 10일까지의 <크리틱> 연재를 추가했다. 응답하라 1988, 세월호, 젠트리피케이션, 프로듀스 101,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여성혐오 등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문화사회적 의제를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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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이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크리틱’을 모았다. 200자 원고지 8.5장 남짓한 짧은 글에 담긴 한국 사회에 관한 통찰은 날카롭다. 지은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대표되는 청년들의 현실과 그들을 향한 위로를 보며 “가장 거친 폭력들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가장 부드럽고 달콤한 언어들이 번성한다. 사회의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청춘들을 내면의 고민과 아픔이라는 심리적 틀 속에 묶어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보인 뒤늦은 눈물과 출국, 외국 순방에서 한 외국어 연설 등 박근혜 대통령을 매개로 한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 진단은 묵직하다. 이후, 촛불 시민은 대통령 박근혜를 끌어내렸다. 과거를 ‘불러내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8)의 미덕도 찾아낸다. 과거에의 ‘향수’는 현실도피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잊어버린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부자와 빈자가 서로 돕고, 전교 1등과 999등이 친구가 되고, 이웃의 상처가 외면당하지 않는 1988년 ‘쌍문동’ 이야기는 ‘좋은 세상’에 대한 집단적 향수로 읽힌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드라마 주제가의 다음을 함께 부르게 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우리 시대는 ‘재난의 시대’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테러리즘, 금융 위기에는 국경이 없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재난을 목도했다. 세월호 침몰. 그날 이후, 피해 가족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개인의 삶과 사회 를 되돌아보게 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재난은 상실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애도’라는 정동(情動·affect)을 동반한다. 애도의 고통은 심리적 차원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애도의 행위가 죽음을 만들어낸 거대한 질서를 인식하게 될 때, 애도는 외적이고 사회적 차원의 투쟁으로 격상될 수 있다. 세월호 비극을 애도하는 국민의 슬픔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기회를 열어젖히는 정치적 성격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세월호 비극을 국가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희생자’만이 드러났을 뿐, 책임소재의 확정도, 제도적 변화의 요청도 사라졌다. 우리 시대는 재난도 만들어내지만 정동도 만들어내고 관리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기쁨, 행복, 긍정과 슬픔과 우울을 오가며 소진된다. 한남동의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읽는 공간이 되었다. 인간의 공간이 자본의 공간으로 바뀌는 젠트리피케이션은 핫 플레이스를 넘어 대학으로 이어졌다. 캠퍼스가 깔끔해지고 고층화될수록 인문-사회-예술은 대학에서 주변화되어 간다. ‘국가대표 걸그룹’을 뽑는 <프로듀스 101>은 남성/강자의 시선을 내면화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약자들이 생존하는 방식의 엔터테인먼트 버전이다. 꿈을 향해 잔인함을 감내하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이다. 소녀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민 프로듀서’는 다음날 아침 일터에 나가 다른 ‘갑’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에너지를 불살라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프로듀스 101>은 걸그룹을 뽑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이 일상인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대한 개론서라고. ‘메갈리아’ 등장 이후 일상의 차별과 폭력에 대한 경험을 고발하기 시작한 여성들의 관심은 페미니즘으로 이어졌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생존 문제다. 여성들은 애도와 분노를 담은 포스트잇으로 강남역을 물들였고, ‘티셔츠’ 한 장 때문에 교체된 성우를 위해 여성들이 연대해 시위에 나섰으며 검은 옷을 입고 ‘낙태죄’ 폐지 운동에 뛰어들었다. 촛불 정국에서는 대통령 퇴진과 함께 광장의 여성혐오를 비판하며 젠더 민주주의를 외쳤다. 문강형준, 부모 성을 같이 쓰는 이답게 여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균형감 있다. 강자인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는 성추행부터 살인까지, 취업차별에서부터 유리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의 폭력을 부르지만, 그에 대한 여성의 반발은 오직 ‘말’의 영역에만 있으며 그 어떤 실제적 결과도 낳지 못한다는 것을 저자는 드러낸다. 저자에게 여성혐오는 ‘약자’ 일반에 대한 혐오의 다른 버전이다. 생물학적 성별이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서부터 죽음에까지 ‘쉽게’ 연결되는 성차별 사회. 오늘 한국 여성들의 분노는 이 점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감각의 제국(개정판)』은 또렷이 말한다. 저자가 『감각의 제국(개정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다. 저자는 사회 현상과 사건, 영화, 드라마, 책 등 여러 문화 현상을 분석하면서 오늘날 한국인을 둘러싼 ‘이야기’들의 맥락을 짚어낸다. 저자에게 ‘문화비평’이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달려들기 전에 그 문제의 맥락이 된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지 판단하는 일이다.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를 취하고 어떤 이야기를 버릴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함을 역설한다. 이 책이 여러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되고, 대학생을 비롯한 청춘의 필독서로 읽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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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돌파하는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서사는 전형적인 ‘우파의 신화’이다. 하지만 이 신화는 ‘위기’를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즉 위기의 ‘역사’는 말하지 않는다. 이 ‘역사 없는 신화’야말로 한국 보수 집단이 만들어낸 유일한 상징체계일지도 모른다. 친일, 쿠데타, 독재, 부패 등의 역사를 내치지 못한 채 냉전과 이권만을 지켜온 보수의 신화는 그래서 텅 비어 있다. 박근혜라는 인물은 ‘지킬’ 역사가 없는 한국 보수의 공허함을 지시하는 기표, 혹은 보수라는 상징체계 아래에 있는 “실재의 사막”이다. - “박근혜, 혹은 실재의 사막” 중에서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에서 세월호로 이어지는 거대한 재난은 비정규직 대우와 손쉬운 해고에 분노하다 자살하는 노동자들, 합리성과 효율성에 최적화된 인간을 생산하기 위한 살인적 교육 속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청소년들, 만성적인 스트레스, 우울증과 폭력에 시달리는 한국인 전체가 겪고 있는 일상적 재난의 확장판이다. 어쩌면 신자유주의는 삶 자체를 재난화하는 체제이며,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묘사하듯 재난 속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미덕으로 만들어내는 변태적인 체제다. 이 변태적인 체제를 합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는 이 재난을 일으킨 또 하나의 원인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안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 적은 누구인가? 인간을 일회용으로 여기는 자본과 그 마름인 국가다. - “적은 누구인가” 중에서 우리 시대는 ‘재난의 시대’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테러리즘, 금융 위기 등에는 국경이 없다. 재난은 상실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애도’라는 정동(情動)을 동반한다. 애도의 행위가 죽음을 만들어낸 거대한 질서를 인식할 때, 애도는 외적이고 사회적 차원의 투쟁으로 격상된다. 애도는 개인의 슬픔을 지칭하지만 정치적 행동이 될 수 있다. 재난으로 인한 국민적 애도는 슬픔을 관통하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기회를 열어젖히는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우리 시대는 재난도 만들어내지만 정동도 만들어낸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극도의 조증과 극도의 울증 사이를 번갈아가며 인간을 소모시킨다. 두 극단 모두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 “재난, 세월호, 애도” 중에서 인간의 공간이 자본의 공간으로 바뀌는 젠트리피케이션이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최신식으로 변해가는 자본의 공간 속에서 우리의 정신은 인간이 아니라 상품에 대한 스마트한 관계 맺기로 새롭게 구성된다. 자본이 구획해놓은 동선을 따르며 상품 스펙터클의 대상이 되고, 자본이 마케팅하는 ‘이벤트’의 관객이 되며, 상품 관계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진다. 오늘날의 대학이 대표적이다. 캠퍼스가 깔끔해지고 고층화되는 현상과 인문-사회-예술이 대학에서 주변화되는 현상은 동일한 것의 양면이다. 자본이 대학을 지배할 때 인간의 학문은 쫓겨나고, 고급 아파트가 서민의 골목을 집어삼킬 때 우리 삶의 어떤 모습들도 함께 사라진다. 모든 것의 젠트리피케이션이다. - “모든 것의 젠트리피케이션” 중에서 ‘학생부’가 중고등학생의 삶을 주조한다면, 자소서는 대학생의 삶을 주조하는 ‘주체화 장치’다. 자본은 상품을 생산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청년의 삶을 생산하는 데로 나아간다. 이렇게 생산되는 ‘자기’란 ‘스스로를 인적자본으로 바라보고 투자 대비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자기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인간’, 곧 신자유주의적 인간형인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그의 삶은 완벽한 자유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자본에 구속된 인간으로 스스로를 관리한다. 오늘날 정치는 국회나 청와대에 있다기보다 기업의 자소서가 만들어내는 청년들의 삶 속에 있다. ‘삶 정치’란 이런 것이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가 청년에게 있다? 아니다. 그것은 청년의 삶을 생산해내는 자본에게 있다. - “자소서는 어떻게 ‘자소설’이 되는가” 중에서 20-30대 여성들은 거의 모두가 크든 작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경험한다. ‘여성혐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혐오를 ‘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약자다. 유대인 혐오, 동성애자 혐오, 전라도 혐오, 장애인 혐오는 있어도 그 반대는 없다. 강자인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는 성추행부터 살인까지, 취업차별에서부터 유리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의 폭력을 부른다. 그에 대한 여성의 반발은 오직 ‘말’의 영역에만 있다. 남성지배사회에서는 ‘남성혐오’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성별이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서부터 죽음에까지 ‘쉽게’ 연결되는 성차별 사회. 오늘 한국 여성들의 분노는 이 점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 “‘묻지마 살인’이 아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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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서문 정치혁명과 문화혁명 서문 이야기에 대하여 2012 좀비, 우리의 거울 2013 앨리스의 선택 2014 공통적인 것을 둘러싼 전투 2015 내일을 위한 시간은 존재하는가? 2016 혐오의 이면
지은이 문 강 형 준 문화평론가. 중앙대에서 영문학·독문학·사회학을 공부했다. 서울대 대학원 영문과에서 ‘토머스 하디의 『무명의 주드』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국 위스콘신대(밀워키) 대학원 영문과에서 ‘포스트아포칼립스 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파국, 광신, 괴물 등 현재의 질서와 불화하는 이질적 담론을 바탕으로 문화 텍스트를 분석하며 한국 사회의 작동 방식을 탐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다. 중앙대 영문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연극원에서 영미소설, 셰익스피어, 문학비평, 문화이론 등을 강의한다. 『파국의 지형학』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영어를 잘하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귀신 간첩 할머니: 근대에 맞서는 근대』(공저) 『사회를 말하는 사회』(공저) 『아이돌』(공저)을 썼다. 『비평가의 임무』 『광신』 『권력을 이긴 사람들』 『루이비통이 된 푸코?』(공역)를 번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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