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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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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조(張潮) 지음 | 이미진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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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벗” 『꽃이 피면 새가 울고 새가 울면 꽃이 피고』는 1650년 청나라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15세 때 뛰어난 문장을 인정받아 박사제자원(博士弟子員)이 된 장조(張潮)의 『유몽영』을 오늘에 맞게 다시 편집한 책이다. 『유몽영』은 잠언 형태의 소품집으로 생활 속에서 느낀 단상을 짤막하게 적어 엮은 작품이다. 계절, 날씨, 꽃, 독서, 벗…… 장조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생기를 더해준다. 평범하고 무의미한 일상은 예술이 되고 건조했던 삶은 풍요로워진다. 명나라 말기 문인들은 양명학의 영향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성 있는 문장을 중시했다. 진실을 강조했고,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과 정취를 담은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청나라, 즉 이민족의 나라에 염증을 느끼던 사대부들은 입신출세보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 자연에서의 한가로운 삶을 추구했다. 『유몽영』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그 시대를 풍미했던 장조의 인생관을 고스란히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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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분주하게 몰두하는 일에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유몽영』은 잠언 형태의 소품집으로 생활 속에서 느낀 단상을 짤막하게 적어 엮은 작품이다. 계절, 날씨, 꽃, 독서, 벗……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소재 삼았다. 장조(張潮)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생기를 더해준다. 평범하고 무의미한 일상은 예술이 되고 건조했던 삶은 풍요로워진다. 장조는 안휘성 흡현(歙縣) 사람으로 자는 산래(山來), 호는 심재(心齋)다. 청나라 3대 황제인 순치제(順治帝) 7년(1650)에 태어나 청나라가 비교적 안정을 찾은 강희제(康熙帝) 집권기에 활동했다. 명나라를 그리워하는 한족의 정서를 간직한 채 청나라 정권에 순응하며 살아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청나라는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돈으로 살 수 있는 관직을 만들었고, 과거 시험을 보려는 생원이 급증하면서 관리가 될 수 있는 가망은 희박해졌다. 장조 역시 과거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4번의 과거 시험에서 모두 낙방했고, 이후 저술과 출판에만 전념했다. 대표작 『유몽영』 이외에도 『심재시초(心齋詩鈔)』 『심재료복집(心齋聊復集)』 『심재잡조(心齋雜俎)』 『해낭촌금(奚囊寸錦)』 등을 남겼다. 장조는 여러 지방을 유람하며 저명한 문인들과 활발히 어울렸다. 하지만 말년은 비참했다. 50세에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혔고, 경제적 상황도 좋지 않았다. 아내, 동생과 사별하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오랫동안 혼자 지냈다. 57~58세 이후의 기록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그 즈음 세상을 등진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 말기 문인들은 양명학의 영향으로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성 있는 문장을 중시했다. 진실을 강조했고,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감정과 정취를 담은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이민족의 나라에 염증을 느끼던 사대부들은 입신출세보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 자연에서의 한가로운 삶을 추구했다. 『유몽영』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그 시대를 풍미했던 장조의 인생관을 담았다. 장조의 글은 담박하다. 화려한 수식도 과장도 없다.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보탬 없이 적었을 뿐이다. 『유몽영』은 근대에 와서 임어당(林語堂)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임어당은 수필집 『생활의 발견』에서 장조는 “내 마음의 벗”이라고 말하며 “중국 문학사에 격언집은 많지만 장조에 비견되는 것은 없다”라며 극찬했다. 『꽃이 피면 새가 울고 새가 울면 꽃이 피고』는 『유몽영』에 대해 교감, 표점, 주석, 번역 과정을 거쳤다. 문맥을 살펴 잘못된 글자를 바로 잡고, 정중서국(正中書局)의 『임어당중영대조(林語堂中英對照)』를 참고했다. 아울러 고려대학교 소장 『소대총서(世楷堂本)』를 저본으로 삼았다. 총 219개 항목에 임의로 번호를 달아 번역했으며 항목마다 문인들이 남긴 평은 번역하지 않았다. 초단위로 바뀌는 분주한 세상, 어느 때보다 평범한 일상이 그립고 소중한 지금, 오래전 혜인의 글을 읽으며 잠시 쉬어가는 건 어떨까. 지금, 여기 우리가 놓치고 있는 평범한 일상 속 아름다움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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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달을 위해 구름을 걱정하고, 정월 보름날에는 호탕한 벗과 술을 마셔야 하고, 사람은 시로 쓸 만한 이를 추구해야 하고, 어린 사람은 노성한 식견을 가져야 하고, 꽃을 심어야 나비를 맞이할 수 있고, 소년 시절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더러운 부자가 되느니 무인은 구차하게 싸우지 않으니 감정은 반드시 백치에 가까워져야 진실해지고, 획이 쌓여 글자를 이루고, 경계함으로부터 안정을 얻고 자신을 단속할 때는 서릿발 같은 가을 기운을 띠고 땅 위의 산수가 있고 봄비는 독서에 좋고 공부하고 독서하는 것을 복이라 한다. 사람에게 한가함보다 즐거운 것이 없다는 말은 모든 일에 각박해서는 안 되지만, 작문하는 방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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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장조(張潮) 자는 산래(山來),호는 심재(心齋). 순치 17년(1650) 안휘성 흡현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15세 때 문장력을 인정받아 박사제자원(博士弟子員)이 되었다. 그러나 시험에 계속해서 낙방해 공생(貢生)의 자격으로 한림원의 도서를 정리하고 교정하는 9품의 한림공목(翰林孔目)으로 일했다. 이후 『심재료복집(心齋聊復集)』 『화영사(花影詞)』 『필가(筆歌)』 『유몽영(幽夢影)』 등을 펴냈다. 1699년 50의 나이에 모함으로 옥살이를 했고, 이때의 충격으로 붓을 꺾었다. 강희 42년(1703)까지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옮긴이 이미진 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고전번역협동과정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 정용국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 전공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수학했다. 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을 지냈다. 문인화의 태도와 방법론을 이어 수묵이라는 매체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영남대학교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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