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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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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즈마 히로키 지음 | 안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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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는 30대에 이미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로 불린 아즈마 히로 키가 2008년부터 2018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반려동물, 가상 화폐, 한국 영화 <택시 운전사>, ‘혐오 발언하는 일본 아저씨’ 등 쉬운 주제부터 인문학의 문맥을 바탕으로 문학-사상에 집중한 비평, 그리고 아즈마가 안정적인 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힘든 독립출판사를 경영하기까지의 이야기까지…… 두툼한 볼륨감에 걸맞은 다채로운 구성이 인상적이다. ‘비평이란 무엇인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은 어떻게 변하는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은 날카로운 통찰과 새로운 시점을 제시해주는 아즈마 히로 키의 ‘현재진행형’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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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철학하기』는 일본의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 동안 쓴 글을 모은 철학 산문집이다. 제1장에는 2018년 경제 신문(석간)에 매주 기고한 글을 수록했다. 하루 업무를 마친 사람들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쉬우면서도 철학적인 에세이다. 스마트폰의 지도만 보느라 ‘현실’의 사회적 격차를 보지 못하는 현대인, 스마트폰에 키워드를 입력하여 경로의 최소화를 당연시하는 여행 문화의 아쉬움, 예술의 실천은 ‘외부인’의 시선에서 이루어진다는 역설,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한 후 가상 화폐 거래는 투자보다 소셜 네트워크 게임에 가깝다는 인식, 딸아이의 입시를 겪으며 인생의 선택지는 무한하니 인생에 무엇이 최선인지 섣불리 정해서는 안된다는 부모의 마음,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바라보는 철학적 깨달음, 프로가 되지 못한 아마추어가 다음 세대의 재능을 찾아내고 키워가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육자의 마음, 동일본 대지진 후 원전 사고 처리 같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별수 없지’라는 태도로 넘어가려는 일본의 근본적인 문제점, 한국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고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의 현대사를 배우지 않는 일본 역사 교육의 문제점까지…… 명쾌한 철학적 입장이 읽는 재미를 돋운다. 제2장에는 2008년부터 2010년에 걸쳐 일본의 문예지 『문학계』에 연재했던 글을 수록했다. 연재 제목은 ‘무심코 생각하기’였는데, 아즈마는 책으로 묶으며 ‘느슨하게’ 라는 단어로 바꾸었다. 친구와 적의 경계를 명확히 긋지 않고 ‘느슨하게’ 생각하기!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가 2000년대를 정리하며 최우선으로 삼은 ‘느슨하게’라는 철학의 태도는 여전히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2020년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물론 2008년~2010년의 글을 읽는 경험은 생경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일본 사회도, 저자가 놓인 환경도 크게 바뀌었다. 밤에 쓴 글을 아침에 읽으면 유치하듯이 저자의 입장에서도 당시의 관심이나 상황 인식이 어설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어설픔’이 중요하다. 아즈마가 회고하는 일본의 00년대는 참으로 어설픈 시대였다. 사람들은 인터넷의 힘을 믿었고, 젊은 세대는 일본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아즈마의 어설픔이란 그 시대에 자신도 똑같이 ‘꿈’을 꾸었다는 데 있다. 아즈마는 말한다. 그 시절 자신은 비평의 무력함에 절망했다고, 비평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그래서 소설을 쓰고, 젊은 저술가들과 교류하고, TV에 출연하고, SNS에 몸담았다고. 실제로 아즈마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느슨하게 철학하기』는 아즈마가 가장 ‘잘나갔던’ 시기의 모음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날이 찾아오고 말았다. 동일본 대지진! 대지진 이후 아즈마는 모든 게 허무하다고 느꼈고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아즈마의 ‘지금-여기’는 이 ‘전향’을 거쳐 이루어졌다. 『느슨하게 철학하기』는 그 래디컬적인 전환의 생생한 증거다. 아즈마 히로키, 그 전환의 순간 제3장에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수록했다. 2010년대 아즈마의 글은 00년대와는 확실히 달라서, 주관적으로는 고민하고 있었지만, 객관적으로는 ‘어설픈’ 시간을 보냈던 00년대의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아즈마의 00년대와 10년대의 분기점은 출판사 ‘겐론’의 창업이다. 이 시기에 아즈마는 대중 매체를 멀리하고 ‘겐론’으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대학에서 삶의 현장으로! 아즈마는 삶의 변화에 맞춰 전혀 다른 형태로 ‘비평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일견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무모한 선택은 아즈마의 ‘실존적’ 필연이었다. 아즈마 히로키는 스물한 살에 비평가로 데뷔했고 스물일곱 살에 첫 저서를 간행했다.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고, 미국에서도 저서가 번역 출간된 이른바 ‘잘나가는’ 사상가다. 그러나 『느슨하게 철학하기』에서 아즈마는 정작 자신은 모든 기회를 우여곡절을 거쳐 선택한, 굉장히 비효율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아즈마의 인생은 ‘그 뒤’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된 채로 끝나버린 일이 많았다. 그 중단의 과정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그건 일본이라는 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아즈마는 일본 전체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헤맸던 시대였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서일까. 아즈마는 다음 시대에는 별로 헤매지 않고 쓸데없는 우여곡절을 겪지 않기를 소망한다. ‘느슨한 비평가’로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데 작은 힘을 더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이 책을 갈무리한다. 『느슨하게 철학하기』는 그를 아끼는 애독자에게는 『존재론적, 우편적』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약한 연결』, 『철학의 태도』, 그리고 최근작 『관광객의 철학』이 어떻게 인쇄에 이르렀는지를 복기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의 이름이 생소한 독자에게는 한 비평가의 ‘과거’가 지금-여기에 어떤 복선으로 다가오는지 확인하는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10대 때부터 인터넷에 노출되어 연령적․기술적으로도 성급한 젊은 독자들이 소설․영화․만화․사회적 사건에 대한 감상을 SNS로 ‘소통’하고 싶어서 아는 척 ‘요약’할 수 있는 평론을 ‘활용’하고, 일본의 SF 대회처럼 온오프라인에서 인기를 모으는 문화 이벤트의 본질이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 )을 좋아해!’라는 마음을 공유했다는 ‘착각’에 불과하며, 오늘날 문학은 영화보다 다이어트에 가까운, 생활을 꾸며주는 취미 분야의 화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즈마의 잔혹한 현실 인식은 우리네 문화 지형도와 너무도 흡사해 보인다. 아즈마 히로키는 루소의 철학과 인터넷 사용자의 감성을 연결 짓는 글에서 “근대 정치사상이 디드로 같은 빈틈없는 정통 지식인이 아니라 루소와 같은 비상식적인 재야 사상가의 저서라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고 적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먼 훗날 초현대 사상은 빈틈없는 대학의 정통 지식인이 아니라 아즈마 히로키 같은 비상식적인 재야 사상가의 저서에서 나왔다는 확신을 눈으로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추천의 글
인생에 좋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에 걸리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고,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한다. 그런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가 도와줄까? “가족, 친구 등 번거로운 작은 인간관계 밖에 없다”고 『느슨하게 철학하기』에서 아즈마는 말한다. 직접 자주 만나 시간을 공유하고, 서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깊은 관계에서만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 도코 고지(와세다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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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평소에 우리는 여행하며 가급적 경로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가능한 한 빨리, 스트레스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좋다고 여긴다. 이는 신체적 여행에 한정되지 않는다. 과거에 우리는 무언가를 알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도서관을 찾아갔다. 지금은 스마트폰에 키워드를 입력하기만 하면 원하는 정보가 한순간에 뜬다. 검색 기술을 지탱하는 것도 경로 최소화를 지향하는 가치관이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가치관일까? 현대인은 바쁘다. 그러다 보니 경로의 최소화를 당연시한다. 리조트로 향하는 마음과 인터넷이 편리하다고 여기는 마음은 경로의 최소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통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인생으로부터 어떤 풍요로움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휴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휴가는 본래 효율성과 거리를 두고 뜻밖의 일(의도하지 않은 사고나 만남)을 즐기기 위한 시간이 아닐까? 나는 약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 화폐는 주식을 운용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경험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가상 화폐 버블 상황에 경제 지식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숫자가 오르느냐 내리느냐, 이것뿐이다. 거래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결과도 곧바로 알 수 있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게임의 조건을 충족시킨다. 가상 화폐 거래는 투자보다 소셜 네트워크 게임에 가깝다. 게임으로 보아도 가상 화폐 거래는 잘 만들어진 게임이다. 중독성도 있다. 하지만 만약 가상 화폐 시장에 투자할 거라면 놀이를 즐기는 차원 정도로 임하는 게 좋겠다. 가상 화폐 투자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못 이해했다가는 비극을 초래한다. 나는 사흘 정도 스마트폰에 달라붙어 있다가 20만 6000엔에 무사히 팔고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왔다. 소크라테스를 향한 비난을 요약하면 ‘너는 뭔가 믿기지 않아. 듣기 싫은 말을 해. 대중의 분위기에 따르지 않아. 그러니 죽어!’다. 범죄를 저지른 구체적인 증거는 없고 소문에 의한 감정의 폭주만이 존재한다. 현대의 SNS에서 곧잘 벌어지는 집단적인 몰아세우기와 똑같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법정 변론은 극히 논리적인데, 무엇보다 자신이 논리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그는 사람들이 논리를 선택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논리’를 선택해 사형을 받아들였다. 플라톤은 이 ‘실패’에서 시작하여 만년에는 장대한 이상국가론을 설파한다. 그 시도의 함의는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다. 인간은 논리적이지 않다. 대화를 쌓아간다고 해서 정의가 실현되지는 않는다. 모든 정치와 철학은 이를 전제로 시작해야 한다. 이제 ‘광주 민주화 운동’은 현대 한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영화 <택시 운전사>도 흥행에 성공했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일본인들은 광주의 역사적 배경을 모를 것이다. 학교에서는 현대 한국사를 배우지 않는다. 역사 교육에서 현대사 비중이 가벼운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의 현대사를 다루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전지구적 사회에서 이 무지로 인한 폐해도 크다. 외교든 무역이든 현명한 선택을 하려면 상대방의 정체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체성은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세상과의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시간을 들여 그 사람과 함께한다는 말이다. 한 인간이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일로 ‘좋아요!’를 누르듯 손쉽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논쟁’으로 상대방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평생 동안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주변 사람뿐이며, 나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마도 이들뿐이다. 이 좁고 번거로운 인간관계를 얼마나 긴밀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인생의 풍요를 결정한다. 가족도 친구도 순식간에 만들 수 없다. 또 번거로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변화가 가능하다. 번거로움이 없는 곳에는 변화도 없다. 정보 기술은 번거로움이 없는 인간관계를 형성해주었지만 이는 인간으로부터 변화의 가능성을 빼앗고 말았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평론’이라고 불리는 글은 꼭 이념이나 세계관 같은 전체성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할까요? 따분한 일상을 매력적으로 꾸미고, 적당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글을 찾습니다. 지금 인터넷에는 그런 글이 대량으로 올라오고, 그 글에 수많은 댓글이 달립니다. 댓글은 또 다른 댓글을 불러오고 실명과 익명이 혼재한 채로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게 블로그 논단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듯이 이런 글은 기존 관점에서는 아예 평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심 대상을 분석할 뿐(‘비인기非モテ’ ‘리얼충リア充’ 같은 속어가 그들의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알려줍니다) 커다란 이념이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그곳에서 평론은 소통을 위한 떡밥에 지나지 않습니다. 1980년대식으로 얘기하자면 소비재일 뿐인 거죠. 그렇다면 SF 대회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 걸까요? 제 생각에 그 본질은 프로그램에 있지 않습니다. SF 대회에서는 심포지엄이 열리고, 교류회도 열리고, 수상자 선정결과도 발표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없어진다고 해서 장르가 사라지지는 않지요. SF 대회의 중요성은 오히려 그것이 열린다는 사실 자체, 즉 몇백 명, 몇천 명의 SF 애호가들이 모여 1년에 한 번씩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SF를 좋아해!’라는 마음을 공유하는 — 또는 공유했다고 착각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 있습니다. 현대 사상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이는 라캉이나 지젝이 자주 분석했던 현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상’이라는 거죠. 그럼, 이 분류 가운데 문학과 비평은 어느 카테고리에 속할까요? 실은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라이프 스타일에는 여섯 가지 소분류가 있습니다. 그중에는 ‘예술과 문화’ 라는 카테고리가 있고, 신간 서평이나 문학상 기사는 현대 미술이나 연극 기사와 함께 여기에 저장됩니다. 라이프 스타일에는 ‘예술과 문화’ 외에 ‘자동차’ ‘교육’ ‘음식’ ‘건강’, 그리고 ‘여행’이 있습니다. 물론 이 분류는 특정 사상을 기준으로 나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죠. 그러나 이 소박함과 난폭함이 현재 문학과 비평, 혹은 더 넓게 ‘문화’의 위상을 사유하는 데 거친 통찰을 제시합니다. 이 분류가 의미하는 바는 현대 사회에서 문학과 비평은 새로 출시된 자동차의 디자인,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 연말연시 해외여행 등과 마찬가지로 생활을 꾸며주는 취미 분야의 화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잔혹한 현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엔터테인먼트’조차도 아닌 거죠. 오락에도 끼워주지 않는 거죠. 엔터테인먼트의 소분류는 ‘예능’ ‘영화’ ‘음악’ ‘TV’ ‘코믹과 애니메이션’의 다섯 가지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문학은 영화보다 다이어트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논단지나 문예지에 원고를 써도,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신문의 논단 시평을 담당해도, 이를 통해 다소 명예와 재산을 손에 넣어도, 나는 항상 ‘이것은 진짜 인생이 아니다’ ‘진짜 현실은 여기에 없다’고 느꼈다. 그런 일을 할 때 내 주변은 온통 몽롱해서 마치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지금이라도 바로 리셋(reset)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나와 현실 사이에 항상 반쯤 투명한 막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이는 매우 유치한 감각이다. 나도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치함을 자각했다고 해서 그 감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20대와 30대의 20년 동안 줄곧 이 유치한 위화감 때문에 괴로웠다. 이는 겐론을 시작할 때까지 이어졌다. 왜 겐론을 만들었느냐?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에 답한다. 대학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출판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TV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인터넷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이쪽이 더 자유롭고 즐거우니까……. 모두 거짓이 아니다. 비평은 자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대학과 출판은 더 이상 자율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겐론과 같은 운동체가 등장하는 것은 비평사의 필연이라고 느낀다. 나는 이 필연을 구현한 것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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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2018
비탈진 도시, 도쿄 11 ii. 2008-2010
무심코 생각하기 1 전체성에 대하여 (1) 93 iii. 2010-2018
현실은 왜 하나일까 325 후기 405 옮긴이의 글 412 연재 목록 420 지은이 아즈마 히로키 東 浩紀 197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교양학부 교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솔제니친 시론」으로 비평가로 등단했다. 도쿄공업대학교 세계문명센터 특임교수, 와세다대학교 문학학술원 교수로 재직했다. 2013년 와세다대학교 교수를 끝으로 대학을 떠나, 잡지 『겐론』을 발행하는 출판사 ‘겐론’의 편집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존재론적, 우편적』 『우편적 불안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퀀텀 패밀리즈』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일반의지 2.0』 『약한 연결』 『철학의 태도』 『관광객의 철학』 등이 있다. 1999년 『존재론적, 우편적』으로 제21회 산토리 학예상, 2010년 『퀀텀 패밀리즈』로 제23회 미시마 유키오상, 2015년 『약한 연결』로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2017년 『관광객의 철학』으로 제71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안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 일본문학을 전공했다. 도쿄대학교 총합문화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일반의지 2.0』(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태도』(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아즈마 히로키) 『이 치열한 무력을』(사사키 아타루) 『야전과 영원』(사사키 아타루)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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