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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나의 친애하는 숲

나의 작은 오두막, 나의 숲속 해방일지

 

 

 

 

 

 

   

- 에두아르 코르테스 지음 | 변진경 옮김
- 120*200 / 272쪽
- 16,800원
- 2022년 5월 31일
- 979-11-86561-83-6 (03860)
- 010.4417.2905(대표 윤동희)

         
 

삶이 우리에게 부딪쳐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나무’를 통해 삶에 숨구멍을 냈다.

고요한 ‘숲’에서 나무와 시간의 흐름을 관찰하며
삶으로 돌아온 행복소생기

삶이 우리에게 부딪쳐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세상에 지쳐서, 사람들이 싫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이 안겨주는 상처를 부둥켜안고 작전상 후퇴를 선택해야 할까. 작가이자 여행자이자 양치기인 에두아르 코르테스는 상처가 쓰라리더라도 반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 사육자로 7년을 헌신한 시간. 그러나 세계화된 시장의 메커니즘에서 양치기의 운명은 미친 짓이었다. 실패를 인정하고 농장을 처분하고 양떼를 파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빚이 쌓였다. 가족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마흔 살을 앞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소셜 미디어 계정을 삭제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별을 바라보며 몽상하기, 개미를 관찰하기, 파란 박새의 노랫소리 듣기, 나뭇가지 수액 마시기……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손수 만든 오두막에서 간소하게 살며 하루하루 ‘해방 일지’를 적었다.
고요 속에서 나무와 시간의 흐름을 관찰하며 자신의 삶과 절제되지 않은 우리 시대를 조망하며 삶으로 돌아온 행복소생기. 『나의 친애하는 숲』이 당신의 ‘해방’을 응원한다.

 




출판사 서평

“나는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지내기 위해 오두막에 들어왔다.
삶이 우리에게 부딪쳐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삶이 안겨주는 상처를 부둥켜안고 작전상 후퇴를 선택해야 할까. 작가이자 여행자이자 양치기인 에두아르 코르테스는 ‘공격’을 선택했다.

양치기와 양 사육자로 7년을 헌신한 시간. 그러나 실패를 인정하고 양떼를 처분하는 데는 하루만으로 충분했다. 세계화된 시장의 메커니즘에서 양치기의 운명은 돈키호테처럼 미친 짓이었다. 그는 농장을 처분하고 양떼를 팔았다. 감당하기 힘든 빚이 쌓였고, 땅 문제로 가족과 사이가 틀어졌다. 보조금을 받아 사태를 모면하려고 했지만 쓸데없는 서류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 아내와 아이들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다. 영혼의 우울함…… 영혼이 시들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무기’를 선택했다.

마흔 살을 앞둔 어느 날, 그는 소셜 미디어를 삭제하고 프랑스의 어느 숲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여전히 얼어 있는 겨울의 끝자락, 그는 6미터 높이의 참나무에 오두막집을 지었다. 발전 장치, 직소기, 절단기, 연마기, 대패, 드라이버…… 그의 농업 장비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았다. 오두막을 완성하자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네 개의 나뭇가지 사이에 자리 잡은, 나무와 유리로 만들어진 오두막은 세상에 지친 그를 보호해주는 피난처였다.

불안, 실패, 일탈…… 가족은 그의 선택을 내버려두었다. 평가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았다. 숲속의 생명도 그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비록 세상에서 몰락했지만, 그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과거의 불행에 눈물을 뿌리면 다른 불행이 자란다는 것을 숲은 가르쳐주었다. 참나무 수액, 크고 작은 나뭇가지, 돋아나는 새 잎…… 그는 나무의 높이에서 삶을 바라보기로 했다. 나무를 통해 삶에 숨구멍을 내기로 했다.

일회용품, 플라스틱, 해시태그(#),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 곳. 나무 위에서의 하루하루는 아름답고 간소했다. 그는 햇빛에 맞춰 삶의 리듬을 이어갔다.

아침: 새벽 기상, 운동, 명상, 세수, 식사, 글쓰기, 읽기.
오후: 관찰, 육체노동, 운동.
저녁: 식사, 하모니카 불기, 읽기,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기.

움직이지 않은 채 시간을 받아들이는 나무를 통해 그는 삶을 재조명하려면 시간을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시계가 없는 생활은 시간 낭비라는 초조함을 거두어들였다. 세계의 가속화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이제 그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순간’만 헤아리며 나날을 제거한다.

나무는 온난화 시대의 피난처다. 숲은 탄소, 질소 산화물, 미세먼지를 걸러낸다. 잎은 공기와 생태를 정화한다. 그러나 숲은 어느 때보다 고통을 겪고 있다. 숲이 말라가고 있다. 그동안 나무는 인간을 위해 존재해왔다. 어쩌면 처음으로 나무에게 인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말한다. 나무는 도시나 사막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선 심어야 한다고.

계절이 지날 무렵, 작가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다시 세상 속으로. 세상으로부터 조금 벗어나는 법을 배웠을 뿐인데 세계와 인간과 다시 관계를 맺어야 하다니…… 두려웠다. 그는 자신을 껴안아준 나무를 끌어안았다. 나무기둥에 이마를 대고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나무가 허락해준 인연을 돌아보았다. 새끼를 먹이러 수백 번을 오가는 박새,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나무를 쪼는 오색딱따구리, 그런 딱따구리를 내쫓기 위해 대결하는 동고비 암수 한 쌍, 마가목과 너도밤나무 사이를 빠르게 건너는 다람쥐,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추격하는 노루, 오두막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 들어온 풍뎅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멧돼지, 낙엽을 삼켜 땅에 묻는 지렁이…… 나무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관계의 힘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무 위 오두막에 살며 그는 조금은 높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깊은 뿌리와 무성한 이파리는 슬픔과 기쁨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었다. 덕분에 그는 나무의 위안과 숲의 아름다움을 넘어 삶 속으로 기꺼이 모험을 떠나게 되었다. 한동안 세상을 떠나기, 평화를 얻기, 지나간 일을 잊고 새로 시작하기…… 인터넷이 안 되는 숲에서 나무와 시간의 흐름을 관찰하며 다시 삶으로 돌아온 행복소생기, 『나의 친애하는 숲』이 당신의 삶에 한 그루 치유의 나무를 심어줄 것이다.

 

 

본문 중에서

 

6미터 높이의 참나무 가지 위에서 나는 혼자 산다. 바닥 문을 밀어 열었더니 숲의 나라가 펼쳐진다. 나는 한동안 침묵 속에서 지내기 위해 오두막에 들어왔다. 나무 위에서 살면서 나무와 더불어 다시 태어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이 은신처에서 지낼 것이다. 나는 세상과 나 자신에 지쳐서 이 위에 올라왔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게 지쳤을 것이다. 숲의 비호 아래 나는 탈바꿈을 시도한다. 나는 나무의 높이에서 바라보고 싶다.

영혼이 시들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이 내면의 겨울과 싸워야 했다. 나의 싸움은 나무들의 싸움으로서 가능한 한 빨리 빛에 이르는 것이었다. 나는 무기를 선택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간소하게 살며 여행의 낯설음에 기대지 않고 지내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견디고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신선한 공기로 기분을 전환해야 했다. 나무는 산소를 배출한다. 숲은 절대적인 고요함이 존재하는 마지막 장소가 아닐까? 나는 야생의 은신처를 찾고자 했다. 인적이 드물고 숲 치료를 할 수 있는 은둔지.

자연은 상징과 신호로 가득 차 있다. 나무는 새들이 이동할 거대한 야생의 항로에 놓여 있다. 철새들은 불변의 것은 세상의 열광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려준다. 거위들은 별이 있는 쪽을 향한다. 생명체들이 휴대폰의 위치 정보가 아니라 여전히 천체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나를 안심시켜준다. 별은 방향을 제시한다.

내 은둔 생활은 아름답고 소박하다. 이 생활은 나무와 나의 필요에 적합한 규모로 이루어졌다. 이곳에는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해시태그(#)와 화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균형이 유지된다. 숲과 빛이 유일한 방에 밀려들어온다. 작은 내부가 커다란 외부에 열려 있다. 숲의 발코니다. 나뭇가지가 나를 이끌었다. 오두막은 나무와 함께 자랐다. 사람은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만들어냈을 때 성장한다.

오두막에서 지낸 첫 며칠. 삶이 참 즐거워서 한 번도 나무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나는 싹이 트기를 기다린다. 겨울에 숲은 투쟁한다. 봄에 숲은 생산한다. 빛이 도달하면 자연이 드러난다. 아침의 첫 햇살이 비추기도 전에 새들의 지저귐이 계속된다. 새의 지저귐이 나를 부른다. 새벽이 나를 잠자리에서 일으킨다.

내 리듬은 태양의 춤을, 내 기분은 길어지는 햇볕을 따른다. 삶을 재조정해야 할 때는 시간을 멈춤으로써 시작한다. 나는 빛이 동쪽에서 서쪽까지 큰 나무 밑의 작은 초목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하루를 흘려보낸다. 봄빛은 우울증을 불태운다. 시계가 없는 생활에는 시간 낭비라는 감정이 조금도 없다. 나는 몇 달간 먹고 살 것이 충분히 있으면서도 살아갈 시간이 없다는 현대 인간의 딜레마를 해결했다. 내게는 시간이 주어졌다. 자유 시간은 내게 존재를 부여한다.

농부와 새의 소멸은 생명의 큰 이상(異狀)에 대한 위험 신호다. 우리는 침묵하는 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는 내가 이 나뭇가지 중 하나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울고 싶을 때는 마음이 메말라 있었다. 참나무는 내게 다른 길을 가르쳐준다. 빛에 도달하는 것은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을 조금 포기하는 것, 나아가기 위해서 가지 일부는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내 오두막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향한 전초다. 나는 호기심으로 길에 뛰어들었지만 움직이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탐욕을 더 잘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여기서 배운다. 야생의 숲을 건너기 위해서는 걸어가야 한다. 야생이 스며들게 하려면 동고비처럼 둥지를 틀고 산토끼처럼 머무르며 새끼 사슴처럼 쉬어야 한다. 삶의 수액이 우리에게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나무처럼 머물러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목숨을 끊으려고 밧줄을 매달려고 했다. 그날은 두렵지 않았다. 사라진다는 생각은 잘못 산다는 생각보다 달콤하게 여겨졌다. 이 순간에 용기를 요하는 것은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끌어내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불행한데 자신에 대한 연민이 너무 부족할 때, 사람은 밧줄을 매달 생각을 한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행동으로서 존경할 만한 방식은 아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폭력은, 우리가 그것을 죽이든지 그것이 우리를 죽인다. 때때로 나는 죽는 게 두렵지만 여전히 살아가는 게 훨씬 더 두렵다.

숲이 말라가고 있다. 나무들은 갈증을 느낀다. 약해진 나무들은 병이 들어 죽는다. 나무가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무들은 온난화를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어쩌면 처음으로 나무에게 인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벌거벗고 팔을 하늘로 뻗은 채 천상의 샤워를 하며 목청을 다해 노래한다. 숲에 대한 도취가 넘쳐흐른다. 물론 자연의 음악과 혜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은 바보 같다고 여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30일 동안 나무 위에서 지냈다. 비가 오든 햇볕이 내리쬐든 상관없이 날씨가 나무의 크고 작은 가지에 쏟아진다. 천천히, 날씨는 새 잎 돋아나기에 매달린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고 시간은 흐른다. 청회색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나뭇가지 사이에서 흰 선을 긋는다. 세계의 가속화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다른 곳의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나는 나무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본다. 항상.

세계의 시장은 우리에게서 역량을 제거해버린 채 기계를 통해 수익과 채무를 가져가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끝없이 다시 사들이도록 변변찮은 물건들을 팔아대는 기적과 같은 일을 해냈다. 살아가는 앎이란, 내게는 단순히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거나 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잘 소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절제는 나를 소유하는 것을 소유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절망을 통과하는 것은 나 자신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사랑은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이웃을 최선을 다해 잘 사랑할 정도로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을 올바르게 소중히 여기는 한 자유로운 운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장소는 의외의 성역이다. 숲은 나의 접속을 끊어버리고 자신에게 연결시킨다. 나의 나날들은 봄의 끊임없는 흐름에 연결되어 있다. 원료 그대로 또는 공들여 만든 흐름의 매우 느린 전송. 야생의 네트워크가 나를 찾아온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것들을 더 잘 알기 위해 나는 더 섬세해진다. 나무에서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관계의 힘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숲과 굳게 결속되어 있다. 나는 숲과 그곳에서 사는 생명체들과 동행하는 은둔자다. 내 안에는 지렁이의 친구가 있다. 그리고 지렁이는 나무의 친구다. 나무는 인간, 큰 구름, 천체의 친구다. 천체는 성운의 친구다. 그리고 성운은 무한의 친구다. 나는 지렁이를 통해 무한에 더 굳게 결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은둔자다.

나무들은 운 좋게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이동한다. 세계의 경이가 그들에게 온다. 철새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비행한다. 그리고 나는 참나무 등을 타고 이 일주를 끝마친다. 나는 움직이지 않은 채 여행한다. 참나무의 따스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 것을 고맙게 여긴다. 나무는 움직이지 않은 채 신처럼 명령한다. 새들에게, 설치류에게, 나무는 번식하라고 말하고, 그들은 그렇게 한다. 움직이지 않은 채로 나무는 받고 주고 간다. 내 참나무는 나를 지탱한다. 땅 위의 나무는 세계를 지탱한다. 어쩌면 나무가 세계를 들어 올리는 것은 아닐까?

 


지은이

에두아르 코르테스 Edouard Cortès

작가, 여행자, 양치기. 마흔 살을 앞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껴안고, 소셜 미디어를 삭제한 뒤 페리고르 숲으로 들어가 자신이 직접 만든 오두막에서 절제되지 않은 우리 시대를 조망했다. 열 권의 여행서를 썼고, 공동 저자로 참여한 『2CV로 파리-사이공 일주(Paris-Saigon en 2CV)』로 프랑스지리학회로부터 ‘탐험가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변진경

프랑스 리옹2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악한 사람들』『작별: 로물루스, 나의 아버지』『부서지기 쉬운 삶』『철학자의 개』『사랑의 급진성』『죽음에 대하여』『잔혹함에 대하여』 『자살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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