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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손톱

마키노 신이치 단편선

 

 

 

 

 

 

   

- 마키노 신이치 지음
- 안민희 옮김
- 110*183 / 116쪽
- 12,000원
- 2024년 7월 31일
- 979-11-86561-88-1 (04830)
- 010.4417.2905(대표 윤동희)

         
 
 




출판사 서평

“아무 생각 없이 손톱을 톡톡 잘랐다.
손톱이 화로 안으로 튀어 들어가
파사삭 타올랐다.
“어머, 오빠! 손톱을 태우다니,
진짜 미친 거야?”
미치코는 당황해서 얼굴색이 변했다.
그의 손을 꼭 붙들었다.
미치코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레몬』(가지이 모토지로), 『호랑이 사냥』(나카지마 아쓰시), 『비용의 아내』 (다자이 오사무), 인간의자(에도가와 란포)』…… 일본의 근현대 단편소설을 묶는 ‘북노마드 일본단편선’의 다섯 번째 주인공은 마키노 신이치의 『손톱』입니다.

마키노 신이치는 일본에서도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작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 문인에게 인정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일본 근현대문학사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자아내는 작가임에는 분명합니다. 마키노 신이치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그리스 마 키노’인데, 1896년에 태어난 일본인 작가에게 붙은 애칭치곤 특이해서 더욱 기억 에 남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마키노에게 ‘부모’의 존재는 특별했습니다. 우선 아버지. 마키노 의 아버지는 말 그대로 ‘자유인’이었습니다. 방랑자 기질을 타고났을까요, 아니면 지방 소도시의 답답한 삶을 견디지 못했을까요. 그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10년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교감하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보낸 마키노에게 아버지와의 유일한 연 결고리는 미국으로부터 날아오는 편지, 사진, 동화책, 망원경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낯설고도 신기한 ‘미제(美製) 물건’을 접하며 마키노는 자연스레 영어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소학교 교사였던 마키노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반대였습니다. 남 편 대신 가정 경제를 책임진 어머니는 유독 교육만큼은 엄격했습니다. 작문 숙제 는 물론 편지 같은 사소한 글에서도 마키노를 호되게 몰아붙였습니다. 그때마다 마키노는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을 그대로 쓰면 안 되는 걸까? 정해진 형식에 맞 춰 미사여구를 동원해 쓴 글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마키노 문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의 ‘해방’은 희한하게도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1905년, 할아버지의 죽음을 추념하기 위해 아버지가 귀국했습니다. 10년 만의 귀환. 그러나 마키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마키노 역시 사진으로 기억했던 남자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곳은 ‘미 국’이었으니까요. 그곳에 가면 늘 아버지의 미국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며 마키노는 아버지와 가까워졌습니다. 일본어로 말할 때면 갑갑하게 느껴 졌던 감정이 영어로 전달하면 유독 쉬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마키노 부자도 영어 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머니와 일본어로 대화하며 속박당했던 마키노의 감정 은 아버지와 영어로 대화하며 해방되었습니다.

초기 사소설, 중기 환상소설, 후기 다시 사소설로의 복귀…… 마키노 신이치의 작 품 활동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대학에 진학하며 도쿄로 올라온 마키노는 동료들과 함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웁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탐미주의 소 설에 흠뻑 빠진 그는 1919년 동인지 《13인(十三人)》에 단편소설 「손톱(爪)」 을 발표합니다. 미치코라는 인물과 대화하며 자의식의 변화를 예민하게 그려낸 「손톱」은 마키노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꼽힙니다.

아버지의 죽음, 결혼, 간토(関東) 대지진,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융성…… 마키노의 중기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신경쇠약 증세가 심해지며 고향 오다와라에서 이루 어집니다. 1927년 발표한 「수박을 먹는 사람」, 이번 단편선에 실린 「제론」에 서 그는 상상의 공간 혹은 고향을 배경 삼아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분위 기의 작품을 여럿 남깁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전래동화와 유럽 동화를 뒤섞은 듯한 「제론」은 ‘일본판 『돈키호테』’로 불리기에 충분합니다.

후기로 접어들며 마키노는 신경쇠약 증세가 재발하고,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급기야 아내와도 별거합니다. 「박제」 「병세」 등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증적인 작품에서 그 시기 마키노의 초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병세」는 글 을 써야 한다는 압박, 예민한 감성, 심한 감정 기복 등 마키노의 삶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읽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듭니다.

속박과 자유의 끊임없는 갈등. 마키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자, 작가 사카구치 안고는 이렇게 그를 추모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꿈을 꾸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문학을 섬기는 것이었다.”

〇 북노마드 일본단편선 다음 주인공은 호리 다쓰오의 『늦여름』입니다.

 

 

본문 중에서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가 심각하게, 그리고 우연히 떠오른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러다 미쳐버리는 거 아닐까.”
“헛소리하고 있네.”
변함없이 얄밉고 차디찬 미치코의 비웃음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쩝쩝거리는 소리 도 들렸다. 그는 결코 미치코가 들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었다는 듯이 “방금은 혼잣말 이었는데, 사람이 진짜 미치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미친 생각이 떠오른다니까” 하 고 말했다.
“그럼 이미 미쳐가는 중인 건가?”
- 「손톱」 중에서

그는 과장하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미치코는 분명 속고 있었다. 불안스레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마음 에 걸리는 행동들을 떠올려보는 듯했다. 그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머릿속은 점점 또렷해져 평상시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내가 현실에서 웃은 게 아니야. 내 괴이한 환영과 미소를 나눈 거지. 그러니 미치코 에게는 기분 나쁜 웃음으로 보였겠지만, 나로서는 딱히 이상할 게 없다는 거지. 하하 하하하.”
“…” 미치코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
미치코가 점점 진지해지는 것을 보니 그는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웃지 않고 배 길 재간이 없었다. 미치코에게서는 보기 드문 불안한 기색을 목격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 「손톱」 중에서

그는 이유 없이 매우 기뻤다. 천년 묵은 한이 풀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다음으로 해야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물론 미치광이 흉내를 내자는 멍청한 생각은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으나, 그대로 내버려뒀다가는 모처럼 손에 넣은 승리를 으레 그랬듯 다시 미치코 때문에 망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는 시선을 낮춰 무릎을 보면서 무슨 말 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미치코는 불안한 듯 잠자코 있었는데, 이 좋은 기회를 놓쳐 서는 안 되지만 도저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벌인 일은 신중해질수 록 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그는 막다른 곳에 부딪혔음을 들키지 않으려 경대 서랍 을 열었다가 가위가 손에 잡히기에 그대로 꺼냈다. 아무 생각 없이 손톱을 톡톡 잘랐 다. 손톱이 화로 안으로 튀어 들어가 파사삭 타올랐다.
“어머, 오빠! 손톱을 태우다니, 진짜 미친 거야?”
미치코는 당황해서 얼굴색이 변했다. 그의 손을 꼭 붙들었다. 미치코의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 「손톱」 중에서

아무리 재촉한들 시가 되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하긴 난 오늘 아침부터 줄곧 바다만 보고 있었지. 그러고 있으면 어느 정도 시가 떠오를 법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 니지만…… 난 그 감정을 절대 글로 옮기지 못한다. 나는 ‘가장 마지막 감정을 시로 쓰고 싶다’.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 슬프다고 느낀 순간,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마지 막 감정’이다. 그 감정을 글로 옮길 수 있다면야 아무 문제가 없지만…… 나는 항상 그 찰나를 마주했을 때 일종의 공허함을 느낀다. 이 무슨 비참한 일이란 말인가…… 슬프다고 느낀 순간이면 나는 바로 ‘별로 슬프지 않아’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심지어 웃음까지 터져 나올 것 같다. 나는 ‘황홀’에 잠기는 꿈같은 기분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다. 아아, 나는 이미, 내 마음은 이 사람이 나를 탓하든 말든 상관없어지고 말았다.
- 「I Am Not A Poet, But I Am A Poet」 중에서

“제론!”
나는 채찍같이 무서운 물건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사랑스러운 말의 목을 안아주었다.
“너에게 채찍이 필요하다는 말을 어찌 믿겠어? 너를 때릴 바엔 내가 맞는 게 낫지.”
주인의 말에 따르면 제론을 가장 관대한 태도로 무한정 사랑해준 내가 이 마을을 떠 나 도쿄로 가버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밤색 털을 가진 수컷 말은 때려야만 움직 이는 목마처럼 굴거나 일부러 다리를 절뚝대는 멍청하고 뻔뻔한 놈이 되었다는데, 실 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 오늘 우연히 나를 만나 다시 예전의 제론으로 돌아가기라 도 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냐는 것이었다.
“돌아갈 겁니다. 돌아가고말고요. 우리 제론인데.”
나는 한껏 의기양양해진 모습으로 한없는 친밀감을 담아 당당하게 고삐를 쥐었다.
“하루라도 그 녀석을 보지 않아도 된다니 참으로 행복한 일이오.”
주인은 내 등 뒤에서 제론을 비난했다. 나는 내게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동물의 귀를 두손으로 덮어주었다.
- 「제론」 중에서

아무튼 나는 오늘 제론의 준족에 의지해 단숨에 넘어가겠다는 각오를 처음부터 다지 고 고삐를 단단히 쥐고 출발한 것이었으나, 이렇게 터벅터벅 절구통 가장자리를 걸으 면서 험난할 앞길을 생각하니 큰 걱정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지난밤 내렸던 비가 오늘 아침 개어서 주변 풍경은 물기를 머금어 반짝반짝했고, 찬란한 햇빛은 참 으로 호화로운 날개를 하늘이 꽉 차도록 펼치고 얌전히 졸고 있었는데, 그와는 대조 적으로 안 그래도 햇빛이 닿지 않아 온종일 축축하고 음험한 표정으로 시샘하는 시선 만 보내는 얄미운 오르막길은 그 미끄러운 상판 위에 못된 쓴웃음을 머금고 올 테면 와봐라, 하면서 가엾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겠지! 나는 이 비탈길과 싸우기 위해 나와 제론 것을 한 다발로 묶은 짚신과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발 디딜 곳을 파내기 위한 삽을 안장 한편에 매달아 두었는데, 지금 그것이 내 눈앞에서 제론의 발 이 절뚝일 때마다 덜렁덜렁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묵직한 납덩이 같은 것이 가 슴을 꾹 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제론」 중에서

다음 날 새벽 즈음, 나는 다시 공허한 책상 앞을 떠나 어제 그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 하는데, 머지않아 그도 산뜻한 발걸음으로 가게에 들어왔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갑자기 껄껄 웃어대며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는데, 그의 웃음 소리는 마치 까마귀 소리 같았고, 소리는 웃고 있지만 표정은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 았다. 머리 위로 빙빙 돌면서 울어대는 까마귀처럼 상당히 오래 웃었는데, 그의 표정 은 까마귀 덴구처럼 우울해서, 약간 입이 벌어진 채로 목구멍 안에서 웃음소리가 공 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아니 이런, 버림받은 사람끼리 또 만났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기이한 웃 음소리를 이어갔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별로 유쾌하지 않소.”
난 성가셔하며 투덜댔다.
- 「병세」 중에서

“암튼 원하는 걸 말해보세요.” 그는 고집스레 앉아 있었는데 술을 어지간히 마셨는지 오뚝이처럼 몸이 점점 앞으로 쏠리고 있었다. “말할 때까지 안 움직일 겁니다.”
“나 원 참……”
나는 큰 소리를 냈다. 이렇게 곤란하고 이렇게 지나치며 게다가 쓸데없이 의미심장한, 이 무슨 난감한 짓인지 짜증이 났지만, 그가 내 눈앞에서 쏘아대고 있는 꼿꼿한 시선 을 보니 어쩐지 거스를 수 없는 칼끝 비슷한 것에 찔린 듯해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 았다.
그래서 나는 대놓고 내뱉었다.
“저도 하루빨리 소설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요. 쓸데없이 너무 지체된 것 같네요.”
“나도 이제야 작업이 흐름을 탄 참입니다.”
- 「병세」 중에서



 

차례

손톱 1919 6

I Am Not A Poet, But I Am A Poet. 1920 24

제론 1931 30

병세 1934 70

옮긴이의 말 100

작가 연보 109

 


지은이

마키노 신이치牧野 信一

1896년 가나가와(神奈川)현 오다와라(小田原)시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태어난 이듬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십 년 만에 귀국한 보헤미안 아버지, 소학교 교사로 일하며 엄격한 훈육을 고집한 어 머니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했다. 1919년 와세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열세 명의 동인을 모아 『13인(十三人)』이라는 잡지를 창간해 첫 작품「손톱(爪)」을 발표했다. 이 작품 은 당시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에게 극찬을 받았다. 이후 부모 형제를 혐오하는 신변잡기 사소설을 쓰던 초기를 지나, 중기에 이르면 고향 오다와라의 풍토에 고대 그리스나 유럽 중세 이미지를 중첩해 꿈과 현실을 오가는 환상문학을 개척했다. 「제론(ゼーロ ン)」은 이런 환상성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후기에 해당하는 1931년부터는 신경쇠약 징후가 심해지며 사소설 경향으로 회귀했는데, 더욱 어두워진 작풍이 「병세(病状)」에 드러나 있다. 1936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자유와 속박 사이에서 생겨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마키노의 문학은 창백한 자의식, 신경증, 비애감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옮긴이

안민희

동덕여대 일본어과,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및 한국 기업에서 통번역직으로 근무하고, 현재 통번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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