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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

이별의 계절, 긴 터널을 지나는 당신에게

 

 

 

 

 

 

   

- 오지영 지음
- 115*188 / 264쪽
- 15,000원
- 2024년 11월 22일
- 979-11-86561-91-1 (03810)
- 010.4417.2905(대표 윤동희)

         
 
 




책 소개

“이게 사랑 아니면 무엇일까?”

희귀난치병 자가면역질환의 기록,
『아픔이 내가 된다는 것』의 작가 오지영의 첫 소설

이별의 계절을 지나온 사람들,
파도가 피고 지는 바닷가 작은 마을
상처가 여물지 않은 낯설고 버거운 하루하루
어느 날, 나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불시에 찾아오는 엄청난 고통, 사라지고 싶은 만큼 괴로운 나날. 희귀난치병 자가면역질환의 기록을 담은 산문집 『아픔이 내가 된다는 것』을 펴내고 오지영은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100만 명 중 2명이 걸린다는 이 병을 처음 진단받은 날부터 사라지지 않는 고통과 마주하는 하루하루를 담담히 고백한 그의 글은 삶이란 결국 '버티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전해주었다.

'질병이 아니더라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글' '인생을 다시 보게 해준 책'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 독자들의 애정 어린 반응처럼 그의 글은 고통 속에서도 찬연하게 빛나는 삶의 아름다움을 아로새긴다. 글을 쓰는 자로 살겠다며 고통 속에서도 버티고 버텼던 직장인의 의식주를 과감히 버린 첫 결실이었다.

픽션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드라마적 스토리텔링,
바다에서 느릿느릿 살아가며 깨달은 '우리'라는 존재

오지영의 첫 장편소설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는 이야기를 '짓는' 자로 살겠다는 작가의 오래고 절실한 소망의 두 번째 결실이다. 30대 여성 작가, 저마다 쓸쓸함과 서러움을 감내하는 소설 속 다섯 명의 30대 여성. 오지영의 소설은 오늘날 한국문학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여성' 소설가들의 얼굴과 자연스레 겹친다. 남성 작가들이 역사적인 서사를 갖고 있는 데 반해 여성 작가들은 개인의 경험을 기록하는 의미에 그친다는 성차별적 해석을 노벨문학상 정도는 받아야 해소할 수 있는 척박한 현실에서 소설가로 버텨온 이름'들'을 일렬로 호명하게 한다.

하긴 누구의 작품 위에 누구를 포개는 지형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는 '탈남성적' 문장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의 연대'에 당도한 또 하나의 성과라고 부를 만하다. 30대는 실사구시적 일의 경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세상. 그러나 작가는 여전히 30대에도 사랑하고, 다투고, 서운해하고, 아파하고, 헤어지는 자신과 자기 옆에 있는 사람들을 기꺼이 껴안고 싶었다.

광고 기획자로 한 직장에서 10년을 일한 서른다섯 지안,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꽃집 '플라타너스'를 운영하는 서른둘 새봄, 작가 지망생이지만 세상에 떳떳한 글을 내놓지 못해 움츠러든 서른다섯 민, 동료를 싫어하지 않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터놓지 않는 와인 가게 부점장 서른여덟 희나, 남편을 떠나보내고 학창 시절부터 결혼 생활까지 모든 기억이 묻혀 있는 양양에 카페를 연 서른아홉 소윤까지.

소설 속 다섯 여성은 '결핍'이라는 부력에 떠밀려 강원도 양양의 작은 마을에 우연히 모인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밤에도 바다가 피고 지는 곳,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파도가 일렁이고 부서지는 곳. 저마다 심연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외로움과 두려움은 파도 위로 떠오르고, 서로 독립적이고 무관한 듯 살아가던 다섯 여성의 우연적인 만남은 이내 운명으로 반짝인다. 바다가 어떤 곳이던가. 이브 몽탕(Yves Montand)이 <고엽(Les feuilles mortes)>에서 “삶은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아 버리지, 아주 슬며시 소리소문없이, 그러고 나면 바다는 지워버리지, 그들이 찍어놓은 모래 위 발자국들을”이라고 노래했던 때는 1946년이었고, 쓸쓸한 목소리의 가수 임지훈이 “어느새 사랑 썰물이 되어 내게서 멀리 떠나갔네”라고 절창했던 때는 1987년이었다. 오래전부터 바다는 그런 공간이었다.

한편으로 바다는 음운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한 문장 한 문장 반듯한 문장으로 사랑에 패배한 다섯 여성의 무력함을 더없이 담백하게 그려낸 작가에게는 더더욱 그런 곳이었나 보다.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더 흔한 운명의 방해공작에 지칠 때마다 찾아간 곳이 바다여서일까. 소설 속 다섯 여성의 일상이 헤엄치는 바닷가 마을의 하루하루에서 작가의 실존적 운명도, 소설 속 다섯 여성의 삶의 찢김도 바다는 너른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한 편의 담백하고 감각적인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그들의 기쁨과 슬픔과 절망에 또르르 눈물을 떨구다가, 서로의 눈을 맞추는 아름다운 풍경에 빙긋 웃는 자신을 확인하다가 결국 어느새 당신의 발걸음은 바다로 향할지도 모른다.

“내가 했던 것, 우리가 했던 것은 분명 사랑이었어. 그것만은 당신이 틀렸어.”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저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다는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첫 소설을 어색해하는 듯하다. 현실의 고통과 허구의 욕망이 몸속을 비집고 나와 자신만의 언어로 밀물과 썰물을 교차하는 모습을 편집자의 자격으로 찬찬히 지켜본 자로서 감히 말하련다. 감정의 담백함과 겸손한 어휘의 선택만으로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만약 순문학이라는 게 여전히 필요하다면 작가의 이야기가 그 마지막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이다.

소설가 오지영은 몇 해 전 유난히 밝은 봄날, 직장이라는 안전하고 튼튼한 울타리를 자기 손으로 열고 나와 품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고, 여러 이야기를 서성였지만 결국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사랑을 선택한 작가의 쓰기를 옹호한다. 불안하고, 비겁하고, 옹졸하고, 치졸하고, 두려움과 오해의 연속이더라도 사랑은 사랑이 아니던가. 다른 감정으로, 다른 단어로 애써 숨겨도 사랑은 사랑. 지안에게서, 새봄에게서, 민에게서, 희나에게서, 소윤에게서 '이건 내 이야기야'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도 기꺼이 옹호하리라 믿는다.

내친김에 물으려 한다. 당신은 누구의 이야기에, 누구의 사랑에 공감하는가. 누군가의 숨은 구석을 알아채고, 살피고, 보듬고, 내어주는 마음. 상처 입은 기억이 고여 있는 시간을 통해 회복하고 다시 흐르는 회복. 기꺼이 다른 사람의 안녕에 도움을 주는 배려. 그렇게 소설을 쓴 자와 읽는 자가 서로 닮았으면 좋겠다. 상처를 보듬고, 회복하고, 무언가로 채우는 '다정한' 사람들.

아픔과 사랑의 힘으로 산문을 쓰고 소설을 짓는,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름 석 자를 당신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오지영 첫 장편소설 『내 마음은 바다에 있어』.

 

 

등장인물

 

지안(35) 광고대행사 'A&E 커뮤니케이션즈' 과장, 전 남친 건우
광고기획자(AE)로 한 직장에서 10년을 일했다. 광고가 곧 나이고, 내가 곧 광고 인 삶. 혼자가 익숙했던 삶에 잠입해 훼방을 놓은 건 건우였다. 대학생 광고 연합 동아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 그 시절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는데, 경쟁 프레젠테이 션 때 상대 회사 아트디렉터가 되어 있던 건우를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이어진 건우의 끈질긴 구애. 하지만 긴 연애 끝에 지안에게 당도한 것은 건우의 바람이었 다. 잔잔한 삶에 켜진 빨간불, 지안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 무작정 양양을 찾는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한 뼘 한 뼘 늘어날수록 지안의 선택은 달라진다.

새봄(32) 양양 꽃집 '플라타너스' 사장, 전 남친 진운
꽃을 사람으로 만들면 새봄이지 않을까. 이름처럼 봄 같다. 매일매일 꽃과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다. 그다음은 꽃집 옆 카페 레콩포르를 운영하는 소윤. 새봄을 아는 모두가 새봄을 좋아하고, 새봄도 그들 모두를 좋아한다. 좋은 것도 좋고, 싫 은 것도 좋다며 아이처럼 해맑게 미소 짓는 사람. 그러나 그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새봄을 찾아온 갖가지 결핍. 그 결핍을 남자친구 진운을 통해 채웠다. 그래서일까. “너는 내 아이 같아”라고 새봄을 유난히 좋아했 던 진운은 헤어짐의 이유도 같았다. 아이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믿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꽃꽂이를 배우겠다며 찾아온다.

민(35) 작가 지망생, 전 남친 준
내 직업은 무엇일까. 누군가 직업을 물어올 때마다 머릿속을 떠도는 질문. 사람들 에게 “작가입니다” 또렷이 말할 수 없지만, 온종일 글을 지으며 보내니 분명 글 쓰는 사람. 약간의 예민함이 존재하지만 남자친구 준만 있으면 누구와도 섞일 수 있고, 무엇이든 넘길 수 있었다. 보물 1호는 준과 함께 구조한 길고양이 마틸다. 대학 동기인 준과 10년을 연애하고 헤어졌다. 그중 세 해를 함께 살았다. 지금은 준의 형수인 소윤의 카페에서 일한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형수가 운영하는 카페에 서 일한다며 사람들은 수군거리지만 한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희나(38) 와인숍 부점장, 전 남친 수호
와인 가게 부점장. 동료를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터놓고 나누진 않는다. 서른이 넘고 나서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내가 내린 선택에 책임 지는 사람이 되어야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있다. 와인은 혼자 마 셔도 청승맞지 않아서 마시기 시작했고, 계속 마시다 보니 소믈리에 자격증을 손 에 쥐게 되었다. 세련되고 수려한 외모 덕분에 와인을 사러 왔다가 치근덕거리는 남자 손님이 꽤 있지만, 연애를 즐기지 않는다. 단 한 사람, 수호는 '속이 보이는' 사람이어서 좋아했다. 투명한 사람. 하지만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수호의 고백이 마음을 할퀴었다. '내가 한 건 사랑이 아니었다고?' 괜찮을 줄 알았는데 흐르는 눈 물을 멈출 수 없다.

소윤(39) 양양 카페 '레콩포르' 사장, 준의 형수
양양은 소윤의 고향이자 남편 훈의 고향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결혼 생활까지, 모 든 기억이 이곳에 묻혀 있다. 작은 카페를 열어 다시 정착한 양양. “네가 내려주 는 커피가 가장 행복하다”던 훈은 세상에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커피를 내려주 며 마음을 채운다. 간혹 그늘진 얼굴로 카페에 들어서는 이에게 불쑥 스콘과 케이 크를 권유한다.

 


 

본문 중에서

 

서른이 넘었고, 5년을 만났다. 연락 횟수로 싸움을 만드는 일은 진즉 끝났다. 긴 시간 동안 사랑과 더불어 커진 것이 있다면 의리였다. 우리의 의리는 견고하고 단 단하다고 믿었다. (중략) 하지만 건우는 달라져 있었다. 한 해에 두세 번 있는 사 소한 다툼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헤어졌다. 서른을 넘기고 한 연애인데도, 열아 홉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낸 사랑인데도 쉽게 끝났다. 누가 왜 헤어졌는지 물으면 더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할 만큼.
- 'Season 1 여름' 중에서

30대의 이별이 20대의 이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연애가 끝났다고 해서 울고, 술 마시고, 욕하고, 또 우는 일을 종일 반복 할 수 없었다. 30대는 그래서는 안 되는 나이였다. 헤어짐이 슬퍼도 술은 다음 날 지각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마시고, 출근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동료들과 인사하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업무를 처리하고, 무사히 퇴근해야 했다. 밥을 거르면 체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면 일상이 무너진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 먹고 싶지 않아도 끼니때마다 입으로 뭔가를 넣어야 하는 나이. 지안 도 다르지 않았다.
- 'Season 1 여름' 중에서

다행이었다. 오늘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한다면 곪아버릴 것 같았다. 꼭 누군가 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에게도 속마음을 터놓을 수 없다고 상상하면 무서웠다. 몇 년 동안 진운이 없는 삶은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마음이 통제되지 않았다. 빈틈이 생기면 버려졌다는 생각이 찾아와 머릿속 을 헤집었다. 그런 새봄의 마음을, 아니 표정을 읽었던 걸까. 소윤이 들어주었다. 사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선택을 응원하고,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을 칭찬해 주었다. 조그마한 일을 걱정으로 만드는 새봄에게 조그마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고 이야기해주었다. 언젠가 새봄이 언니가 없었으면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고백하 자 소윤은 말했다. “아니, 혼자여도 버텼어. 너는 버틸 수 있는 사람이니까.”
- 'Season 1 여름' 중에서

바라본다, 웃는다, 쓸어 넘긴다, 만진다, 잡는다. 준을 생각하면 수없이 많은 동사 를 나열할 수 있었다. 민 안의 모든 단어를 그가 만들었고, 민이 쓰는 모든 문장 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러니 김민의 글 역시 정준 그 자체였다.
- 'Season 1 여름' 중에서

“역시 이 자리에 오면 안 됐나 봐요.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자꾸 눈물이…… 아직 도 자꾸 화가…… 좋은 날에 죄송해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떨구는 지안을 소윤이 안았다. 제일 멀리 떨어져 있던 새봄이 다가와 지안의 오른손을 잡았다. 민이 따뜻한 티를 만들자 희나가 지 안 앞에 두었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말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더 울어도 괜찮 다고. 울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인생은 지치게 만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를 빛으로 따뜻하게 비춘다고.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이었다.
- 'Season 2 가을' 중에서

“마흔이든 쉰이든 흔들리는 건 같지 않을까. 나이 먹을수록 요동치지 않으려 애써 몸부림치는 거겠지.”
“저는 너무 쉽게 요동치는 것 같아요.”
“다들 요동치는데 밖에서는 안 보이는 거겠지. 웃을 때 웃고, 울 때 울고, 사랑할 때 사랑하다 보면 닻이 하나하나 생기지 않을까. 파도가 쳐도 덜 흔들리고 덜 슬 픈 날이 오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해.”
- 'Season 2 가을' 중에서

익숙한 몸짓, 익숙한 흔들림, 익숙한 눈맞춤. 서로를 안으며 익숙함이 독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함께 살며 매일같이 서로를 탐하던 때였다. 그 러나 기우였다. 시간이 흘러도 지겹지 않았다. 사랑을 확인할수록 더 갈구했고, 가졌음에도 더 갖고 싶었고, 안고 있는데도 더 안고 싶었다. 몸짓에 생의 희열이 녹아 있었다.
- 'Season 2 가을' 중에서

“나는 마흔이 되어도 아마 서투를 거야. 워낙 서투른 사람이니까. 그런데 어쩌면 애초에 서투르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계속 서툴 고, 그렇게 살다 보면 큰 파도가 작은 파도처럼 작아질 때가 오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사랑이 쉬운 건 아니더라고. 한번 보자. 마흔이 되어도 그런지. 일단 서른여덟까지는 아니었어.”
-'Season 2 가을' 중에서

“언니, 사람들은 참 야속해요. 왜 다들 자신에겐 불행이 다가오지 않을 거라고 생 각하지? 나라고 이런 일 겪고 싶었겠어요? 내가 인생을 헛살아서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니잖아요. 우리 탓이 아니라고요. 물론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긴 했지만. 그러니까…… 자연재해 같은 거잖아요.”
자연재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 자연재해 때문에 내 집이 무너졌 구나. 그래서 다들 저렇게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구나. 그렇다면 연민을 보낼 수도 있지.
-'Season 2 가을' 중에서

“내가 요즘 양양에 가거든.”
“양양이요?”
“응, 양양 가봤어?”
“아뇨, 속초는 가봤어요. 근처 아니에요? 뭐가 달라요?”
“조금 더 조용하고, 따뜻하고, 신기한 곳? 그곳이,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를 조금 변하게 했어.”
보여주고 싶었다. 수호에게. 나, 조금은 변하고 있어.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어. 전 보다 조금은 둥근 사람이 되었어. 이제야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알았어. 창밖으로 가는 눈발이 흩날렸다. 마치 그날의 눈 같아서 수호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서 닿지 않을 말들을 속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수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 다.
- 'Season 3 겨울' 중에서

모든 모습이 아니라 '많은' 모습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말이 좋았다. 사랑에 빠져 서 그 사람의 모든 점을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짓이다. 분명 사랑하는 상대 에게도 싫은 점은 있다. 그것을 어떤 모양으로 수용할 것인가가 곧 사랑이었다. 헤어지며 진운이 남긴 '너무 아이 같아서'라는 말이 목 어딘가에 걸려 있다가 조 금씩 내려가는 것 같았다. 유준의 말대로라면 새봄은 아이 같기도, 가끔은 어른스 럽기도 했다. 그 모습은 한새봄이라는 사람의 다양한 모습 중 한 부분일 뿐이었 다.
- 'Season 3 겨울' 중에서

마지막엔 술에 취해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만 고르고 골라 던졌다. 깨진 유리 조 각 중 제일 날카로운 것만 고른 것처럼 뾰족한 조각들이 날아와 마음에 박혔다. 아팠다. 술이 깨고 정신이 든 다음 그 말들을 되새겨보니, 평소에 늘 이런 마음을 말하지 못한 채 품고 있던 건가 싶었다. 상처를 극복할 수 없었다. 헤어지자는 민 의 말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우리는 빠르게, 열심히 헤어졌다. 이렇게 아플지도 모르고. 미련한 결정이었다.
- 'Season 3 겨울' 중에서

혼자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늘 혼자였고, 혼자여도 뭐든 문제없다고 자만했다. 내가 할 일을 잘하면, 맡은 바를 다 해내면 도움 같은 건 요청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는 건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흔 이 되어서야 알았다. 도움받을 일이 없는 인생이란 애초에 없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순간의 연속이니까. 과거에 없었다면 앞으로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관계가 얽히고설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그 함께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뒤 늦게 알았고, 뒤늦게 안 만큼 진심을 다하고 싶어졌다. 그동안 놓친 순간까지. 희 나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공원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 다. 어느새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 'Season 4 봄' 중에서

그런 시간이 소윤에게도 있었다. 사랑을 주고받고 영원을 노래했던 시간, 모든 것 이 무너지던 시간. 그래서인지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 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정성스레 커피를 내려 놓아주는 것,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 이미 지쳐 있는 당신을 더 지치지 않게 하는 것,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는 것, 계속해서 살게 하는 것.
- 'Season 5 또 다른 계절' 중에서



 

차례

등장인물_ 8

Part 1 여름

지안 · 찬란한 여름, 쓰레기 같은 여름_ 17
새봄 · 아이 같아서_ 33
민 · 내 안의 모든 글자를 만든 사람_ 42
희나 · 내 마음은 고마움이라고?_ 53

Part 2 가을

지안 · 인생에 빨간불이 들어왔다_ 67
새봄 · 시간이 지나면 나아진다고_ 78
유준_ 84
민 · 우리도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했다_ 91
희나 · 큰 파도가 작은 파도가 될 때까지_ 103

Part 3 겨울

지안 · 자발적 백수_ 130
새봄 · 준비의 계절_ 141
유준_ 144
다시, 새봄_ 148
다시, 유준_ 153
민 · 우리의 겨울_ 157
준_ 163

Part 4 봄

지안 ·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_ 173
새봄 · 고여 있어도 괜찮다 말하는 사람_ 187
민 · 밥 먹었어?_ 196
준_ 200
다시, 민_ 205
희나 · 어느새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_ 209

Part 5 또 다른 계절
소윤 · 이게 사랑 아니면 무엇일까_ 221
작가의 말_ 229

 


지은이

오지영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산에서 자랐다. 무엇이든 남기고 싶어 오랫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쓰기 시작했다. 모든 계절을, 그리고 그 계절마다 바다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아픔이 내가 된다는 것』을 썼다. @from__ji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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