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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속물이라니, 선영아
-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두 남자의 고백

속으로 뜨끔했다.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니. 그렇지 않아도 불혹을 넘기며 나의 젊음을 갉아먹은 ‘선배들’이 하는 짓을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는데 속물이라니. 그렇다면 이 책은 작은 일부분을 가지고 누군가의 사람됨을 정의하는 사람을 속물로 정의한 독일식 『불안』(알랭 드 보통)이려니 했다. 그래, 사실 요즘 나 무지 불안하다. 보다 유명해지고, 중요해지고, 부유해지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특별히 물질적이지 않다고 자위했는데 정신적 보상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 잘 나가는 누군가를 여전히 시기하고 질투하는 못난 녀석이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쓰가루』, 아담 브라이언트(뉴욕타임스 부편집장)의 『사장실로 가는 길』, 안토니오 네그리의 『다중』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모양새가 지금의 나를 보여준다. 내 삶을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윤택한, 청춘을 반납한 대가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움을 가졌건만 나는 여전히 ‘속물’이었다. 겉으로 드러내는 가치와 속으로 원하는 것이 다른 사람, 겉으로는 고상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는 듯 말하지만 결국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상실의 시대』 속 와타나베의 마지막 독백은 바로 내 것이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데 샛노란 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을 읽어보니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니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25년이 된 저널리스트와 작가는 이제는 더 이상 묻지 않는 우리 시대의 ‘가치’를 말하고 있었다.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추구하는지 묻고 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원서 제목은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였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독일식 버전에 가깝다고 할까. 가령 이런 식이다.
“나는 과연 정당하게 돈을 벌고 있는 걸까, 하룻밤 강연으로 간호사의 한 달 치 월급을 버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나는 이기주의에 빠져서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나는 40대 이상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그저 그런 ‘속물’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말로만 정의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형편없는 속물로 변해가는 것 같은 불쾌함. 한 장 한 장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독일을 대표하는 두 지식인은 성공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약점과 이중성을 과감히 드러낸다. 지식인과 중산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들의 삶에 모순이 만연해 있다고 고백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사회적 책임감’이었다.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는 무감각한 삶, 사회적 정의를 위해 투표하자고 해놓고 정작 자신이 속한 중산층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는 모습, 환경을 걱정하면서 가족을 핑계 삼아 큰 차를 선택한 자신들의 과오를 낱낱이 까발린다. 우리로 치면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의 존재를 알고 있는, 그리하여 이정희의 정치적 추락과 진보정치의 쇠퇴를 한데 묶어 생각하는 386~포스트 386세대에 해당하는 ‘포스트 68세대(68혁명 이후 세대)’인 두 사람의 고민은 이렇듯 체험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약속한다. 친구여, 이제라도 우리,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튼튼한 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나세. 세상에 휩쓸려 무관심하게 살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세.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생각’ 좀 하세. 정의가 실현되기까지의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우리처럼 성공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보세. 모든 사람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 모든 이들에게 발전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어보세. 자신에게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하세. 그러니 우리 자기 삶의 모범이 되어 보세…… 스스로를 속물이라고 당당히 고백한 독일의 미중년 지식인들의 고민은 바로 ‘가치 있는 삶’이었다. 문제와 해답은 모두 ‘나’에게 있다는 겸허함! 철학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던 하이데거의 고민이 여전히 유효하고, 성과 지향적인 ‘피로사회’에 지쳐 있는 현대인을 다독이고(한병철 『피로사회』), 나는 지금 정의롭게 살고 있는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토론하는 독일 인문학의 깊이가 부러울 따름이다. 명사(名士)의 트위터에서 왼쪽으로 치우쳐 있는 140자를 리트윗(RT)하는 것으로 젊은 날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잊지 않았다고 여기는 당신, 공동체적 가치에 동의하면서도 개인적 욕망에 충실한 당신에게 일독을 권한다. 굳이 마지막 장을 덮지 않더라도 서재의 근사한 마호가니 책장에, 혹은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어도 좋은 책이니 믿어도 좋다(이런 속물근성!). 그런데 나 ‘이런’ 글 쓰고 돈 받아도 되는 걸까?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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