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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미술의 ‘Next’ 플랫폼
- 더블 네거티브: 화이트 큐브에서 넷플릭스까지 2018.12.19 - 2019.2.3. 아르코미술관

새로운 시각 형식을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이 모였다. 물리적 가벽과 어두운 방에서 해방된 비관습적 미술 장치 속에서 미술에 정해진 장소는 없음을 미리 경험해본다.

에디터. 전혜라(jeonhyera@noblesse.com) 글, 사진. 윤동희(북노마드 대표)

<더블 네거티브: 화이트 큐브에서 넷플릭스까지>는 동시대 오픈 플랫폼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의 생산과 소비, 네트워크와 온라인 서비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되는 예술의 ‘장소’들이 어떻게, 다시 화이트 큐브에서 탐색되는지를 연구한 전시(라고 소개되어 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미술은 늘 시간의 흐름을 의식해왔다. 일상을 묵묵히 견디는 미술가들은 시간에 대한 반성과 전망을 품은 의식의 제사장들이다. 신고전주의가 과거를 다시 추앙했다면, 모더니즘은 과거를 부정했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을 기점으로 작가들은 더 이상 과거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과거는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수집하고 편집하고 각색할 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

그 후, 미술은 ‘동시대(the contemporary)’라는 단어와 짝을 이루었다. 일시적인(temporary) 시간을 함께(con)한다는 말은 작가가 지금-여기를 살아간다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영향력을 내면화하고 가시화해온 담론을 미술의 문제로 편입시킨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시간 없는 시간, 즉 무시간성(atemporary) 시대로 접어들었다. 어떤 미술은 과거를 재현하고 어떤 미술은 문서와 이미지를 아카이빙한다. 복고․레트로(retro)가 과거를 ‘기억’하려는 작가를 정당화한다. 어떤 미술은 속도를 높여 미래를 예견한다. 스마트 시대의 다양한 매체성이 미래를 전망하는 작가를 돕는다. 그렇게 미술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그와 유사한 또 다른 장소를 유동한다.

이처럼 오늘날 미술을 비롯한 문화 감각은 네트워크를 유영하며 생을 이어간다. 베를린을 근거로 활동하는 히토 슈타이얼처럼 가속화된 자본주의에서 이미지 제작과 소비 양식, 디지털 이미지와 네트워크의 존재론, 그것이 동시대 예술․정치․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미술가들이 급부상했다. 영화평론가 김지훈은 히토 슈타이얼의 저서 『스크린의 추방자들』을 해설하는 글에서 최근 미술 프로젝트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세 가지 개념으로 수렴된다고 적었다. 첫째, 포스트 재현(post-representation)으로, 이미지를 사전에 존재하는 세계의 투명하고 안정적인 재현으로 간주하는 근대적 시각 문화 패러다임과의 단절이다. 둘째, 포스트 진실(post-truth)로, 고전적 다큐멘터리가 가정하는 미학적․인식론적 단절이다. 셋째, 포스트인터넷(postinternet)으로, 인터넷의 표현과 디지털 테크놀로지 기법 및 정보 접근과 활용 방식이 디지털적 형태와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탁월한 해석처럼 스마트폰, 게임 등 기존의 재현 양식을 벗어난 시각 양식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네트워크는 갈수록 탈인간화되고 있다. 인간의 인식과 육체를 중심에 둔 근대적 시각 문화는 인간 의식과 지각의 통제를 넘어섰다. 구글맵이 보여주듯 과학과 군사 영역에서 사용되었던 ‘수직성’의 시각 체제가 일반인의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슈타이얼의 혜안처럼 지평선의 소멸을 대신하는 공중으로부터의 조망은 “감시 기술과 스크린에 기반을 둔 오락거리로 안전하게 압축된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냈다. 게임이라는 엔터테인먼트가 군사 및 정보 산업의 렌즈를 그대로 옮겨왔음을 생각해보자. 드론으로 바라본 공중 조망은 <꽃보다 청춘> <짠내 투어> 같은 엔터테인먼트의 오락성을 극대화시켜준다.

이러한 비선형적, 다층적 시간으로 전개되는 파편화된 지형도에서 무시간성 시대를 살아가는 미술가들은 사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시각화시켜야 하는 새로운 의무를 짊어진다. 재현으로서의 이미지, 사물로서의 이미지의 주체성을 보유한 자에서 스크린의 형편없는 존재와 경쟁해야 하는 존재로의 변이. 이제 미술가들은 예술이 온전히 속해 있는 ‘올바른 장소’를 포기해야 생존할 수 있다. <더블 네거티브>전에 참여한 작가들(강정석 김민애 곽이브 박보마 송다슬 이미래+크리스토퍼 마흔 이주리 장서영 홍지훤 ISVN)처럼 전시가 스스로의 형식을 어떻게 지속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전시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해진 장소는 없다”고. 화이트 큐브와 넷플릭스를 동시에 오가야 하는 미술가들은 고정된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의심한다. 화이트 큐브가 위기의 공간이 될 수 있고, 넷플릭스가 평온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작가들이 이미 깨달은 것처럼 본래 예술은 탄생부터 ‘바깥’이었기에 너무도 당연한 질문일 것이다. 화이트 큐브와 넷플릭스도 아닌, 중심에서 벗어난 위치에 스스로를 놓음으로써 자신의 좌표를 인식하고, 미술의 플랫폼으로써 당연하게 여겼던 미술관의 (불)가능성을 탐색하고, 비물질적 예술의 제작․유통․기록의 방식을 미래적으로 고심하는 시공간. 바로 <더블 네거티브>전이다.









전시의 제목은 1969년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가 네바다 주 사막에 완성한 대지미술 <더블 네거티브>와 2017년 1월 넷플렉스에서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차용했다. 오늘날 시각 예술을 감상하는 관람자가 갖는 ‘중심에서 벗어난’ 위치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전시는 아르코 미술관을 넘어 제3의 장소로 링크되어 이동한다. 참여작가 홍진훤의 출품작인 DNWN의 double-negative.xyz는 전시를 둘러싼 개념들을 웹에서 수집하고 분류해 느슨한 링크를 형성한다. 작가에 따르면 웹페이지는 미술관 전시를 소개하는 한시적 아카이브 저장소가 아니라 대안적 공유지로써의 의미를 갖는다.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대. <더블 네거티브>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근대적 시각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한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미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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