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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청바지라는 사물의 최종 근거, 그 잠잠한 풍경

미술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재현의 원칙을 넘어 추상으로 굽이치고, 그것마저도 고정성으로 간주해 융복합적 다원성이라는 혼돈의 물결로 넘어온 지금, 우리는 미술의 시원이 어디였는지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미술은 미적 범주를 넘어 지식과 정보, 그리고 삶의 실천이라는 대양(大洋)으로 흘렀다. 사람들은 미술에 여러 단어를 덧붙여 미술에 과제를 부여한다. 전지구화, 신자유주의, 비엔날레, 자율성, 참여, 액티비즘, 관계미학, 플랫폼, 유목, 테크놀로지, 게임, 신생 공간 등에 미술은 즉시 반응해야 했다. 어떤 것은 텍스트로 불리고, 어떤 것은 콘텍스트로 불리는 변화에 맞춰 작가, 큐레이터, 비평가, 그리고 눈 밝은 관객들은 미술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수정했다. 이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미술 담론을 주도하는 미술 제도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미술에 대한 왈가왈부는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 그리하여 작업을 조금 쉽게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아닌’ 이들이었던 것 같다. 작업을 하지 않는 이들이 새로운 스펙터클을 요청하고, 대중의 호기심과 페티시즘에 작가가 순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술을 이해하는 것과 미술을 향유하는 것과 미술을 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모른 체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을’로 살아간다. 작가는 작업만 하는 게 아니다. 학력과 경력을 위해 해야 하는 부수적인 일들이 너무도 많다. 특별히 배운 것은 없지만 짧지 않은 인생에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선생을 받들어야 하고, 가방끈을 길게 이어야 하고,‘핫플’로 떠오른 전시 공간을 탐문해야 하고, 작업실을 나와 레지던시 문도 두드려야 하고, 미술 시장 참여자에게 요구되는 매너와 국제적 커리어도 쌓아야 한다. 언제부턴가 작가들은 미술 제도를 구성하는 자들의 발언을 경청하는 존재가 되었다. 미술의 동시대성을 의식해야 한다는 세상의 주문에 응하는 순간, 작가의 삶은 고단해진다. 그것은 탈경계, 탈중심이 핵심 화두로 자리 잡은 지금 더욱 강해져서 시대와 제도에 탄력적이지 않은 작가들은 생존하기 어려워졌다. 누구보다 속물근성을 지닌 나 역시 언젠가 작가들을 상대로 ‘1인 아티스트’가 되라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고 작업의 콘셉트를 지속적으로 알리라고 강연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작업하는 최소영은 미술에 수반된 일을 거의 하지 않는 작가다. 그는 오직 작업만 한다. 대학 2학년 무렵, 운명적으로 조우한 ‘청바지’의 물성과 질감을 그는 불혹에 접어든 지금도 붙잡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묻는다. 청바지의 매체성을 질문하고,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서술하는지 궁금해 한다. 어떤 질문은 새로운 것을 요청하는 당대의 전시 양식에 그의 작업이 형식적․문화적 한계를 지닌 건 아닌지 의심한다. 공교롭게도 그 사이 세상은, 미술은, 너무 변했다. 그런데 최소영은 어느 물결 속에서도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을 밑그림 삼아 청바지를 꿰매고 재단해왔다. 2000년대와 2010년대의 파고는 분명 달랐지만, 최소영은 오직 한 호흡으로 유영해나갔다.



흔히 작업은 노동(work)의 결과물(works)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소영의 작업은 노동의 강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노동의 집적으로 채워진다. 2천 벌의 청바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그의 작업실은 말 그대로 ‘작업’실이다. 그는 평균적으로 15일에 1점의 90퍼센트 공정을 마치고 다른 작업을 시작한다. 새 작업을 진행하다가 이전 작업의 남은 10%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그에게 청바지는 단순한 청바지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인식하는 존재 의식의 통로다. 의복이라는 특성이 제거된 청바지는 작가의 감각으로 풍경이 된다. 그가 청바지라는 공산품을 미술로 이식시킬 때, 우리의 일상성은 문화적 상태로 전환되고, 부산이라는 도시를 준거 삼은 도시의 정치경제학은 파래진 캔버스로 옮겨간다.

청바지라는 물성에서 알 수 있듯이 최소영의 작업은 일정한 색채감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근작에서 작가는 청바지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계절의 색채감을 우려낸다. 금정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온천천이 흐르는 부산의 구시가지 풍경. 그 닮은 듯 다른 풍경을 그는 눈으로 담고, 걸어서 느끼고, 캔버스로 옮긴다. 세잔에게 생 빅투아르 산이 있었듯이, 최소영은 금정산 아래 도시 풍경과 더불어 나이를 먹는다. 일상의 풍경을 노동으로 담는다. 무엇보다 작가는 그 일을 즐거워한다. 최소영에게 미술이란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차를 다려 마시는 일과 같다. 작가에게 그 일은 동시대성이라는 미술 담론보다 더 중요해 보인다. 청바지라는 핵심 지표를 찾아내 도시 풍경과 바다를 집요하게 담았던 20대, 런던 풍경의 색다름을 몸으로 느끼며 도시 풍경을 확장시켰던 30대, 그리고 새 갤러리와 협업하며 <지구> 시리즈 등 새 작업에 몰두하는 지금까지. 그 20여 년의 시간 동안 최소영은 작업에 몰입한 시간이 작가의 ‘시리얼(serial)’적인 작업을 완성시킨다는 평범한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어느 작가도 따라올 수 없는 노동의 집적, 그 패턴의 반복으로 형성된 작가 특유의 문화 감각. 여기에 최소영은 요가, 명상, 채식의 생활 감각을 더해 좀 더 포괄적인 작가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작업에 아로새긴 붉은 산과 푸른 하늘은 노동집약적인 바느질로 뭉쳐 있던 작가의 지난날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듯 보였다. 그것이 나에게는 인간 본연의 삶으로 다가왔다.



(중제) 노동의 반복으로 직조된 문화 감각, 그것을 포괄하는 생활 감각

대부분 사람들은 ‘저기’라는 먼 곳을 바라본다. 그것을 성공의 지렛대로 여긴다. 그러나 최소영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자신과 자신을 설명하는 노동이 존재하는 ‘여기’만 의식한다. 그에게 미술이란 내재성의 태도로 만들어가는 일상의 실천이다. 그에게 미술은 바깥을 향하는 것도, 중심을 향하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미술이란 애당초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 무엇이다. 미술은 미술을 하는 자에게 어떤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술은 잡혀지지 않는다. 그걸 잡겠다고 발버둥치는 꼴이 우스운 까닭이다. 최소영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주변의 조언과 간섭, 동시대 미술에 쏟아지는 질문에 휘둘리지 않고 무쏘의 뿔처럼 걸어온 존재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최소영의 작업을, 미술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젊은 작가들이 ‘참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여전히 미술을 모르고, 학교를 졸업하고 미술을 하겠다고 남았지만 그것이 옳은 선택인지 확실치 않고, 일정과 제목이 결정된 전시를 앞두었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모르는 불안의 파동에 힘겨워하는 이들이 그의 작업 앞에 서기를 바란다. 그들과 동일하게 미술 제도의 ‘판단’을 의식해야 했던 작가가 선택한 일은 오로지 미술에 매진했다는 것,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작가는 말한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미술을 하는 사람은 미술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에게 그 말은 미술의 본질은 작가의 작업 말고 다른 어떤 것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한 점 한 점의 작업이 최후이자 최고의 것이라고, 오직 작업만이 작가에게 진정한 자립성을 안겨준다고, 그 외에 모든 현실적인 것은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환경은 결국 변하는 것. 미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는 자립성을 갖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을 창조하고 유지한다. 작품은 작가의 인식과 경험과 감각에서 생겨나고 결국 작가에게 되돌아간다. 작품은 작가를 존재하게 한다. 작품이 미술의 시작과 끝이다. 언젠가 원숙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주인행세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세상은 안다. 그 작품이 누구 것임을. 그때가 오면 작품이 작가를 정의한다. 세상은 작품을 통해 작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그 순간, 작가와 작품은 역사가 된다. 작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묵묵히 노동을 감내하는, 그런 존재다.



대변약눌(大辯若訥), 본래 최고의 언변은 마치 말을 더듬는 듯하다고 했다. 최소영은 자기가 보지 못한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하고, 듣지 못한 것을 듣지 못했다고 하며,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지 않았다고 인정하는 작가다. 기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아서 문제다.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통용되는 주제 의식을 알려고 노력하고, 매끄럽게 잘 만든 전시를 내놓으려고 애써서 문제다. 그러나 최소영은 다르다. 그는 제도가 요구하는 미술의 도그마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몸을 고되게 ‘움직여’ 미술의 자주권을 미술 제도에서 작가에게로 끌어온다. 그의 꾸준한 노동은 실용적인 목적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순수하다. 그 노동의 결과가 다양한 예술 실천의 영역에서 미력하게 보이지만, 작가가 청바지를 박음질하는 노동의 강도만큼 그의 감각은 구체적이다. 그래서 힘이 있다. 최소영의 박음질은 미술 제도를 미끄러지듯 ‘사선(斜線)’으로 운동한다. 그 끝없는 직조와 해체의 노동으로 작가는 자신과 풍경을 ‘연결’시킨다. 작가가 자신의 삶을 이루는 도시 풍경을 ‘관계적 조직’으로 매듭짓는 순간, 우리는 고답적인 미술의 정체성으로부터 탈주하는 최소영만의 생성(being)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다.



세상의 작가들은 자신의 미술을 한다.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를 분주히 오가며 장소특정적인 설치미술로 이벤트를 벌이는 작가도 미술을 하고,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아와 변두리 어느 작업실에서 비어 있는 캔버스에 막막해하는 작가도 미술을 한다. 사실 뉴욕이나 베를린 또는 베이징이 아닌 곳에서 미술을 하는 동아시아의 우리에게 전속 갤러리가 있고, 개인전 일정이 미리 정해지고, 아트페어에 작업을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엄청난 일을 당연히 여긴다. 작업이 일상이 되는 삶, 그럼에도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 작가가 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제라도 헤아려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소영은 성공한 작가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함께 고심하는 협력 갤러리가 있고, 정기적으로 개인전을 치를 수 있고, 아트페어나 옥션하우스를 통해 자신의 작업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미술의 길을 걸어 일상 세계에 이르는 법을 깨우치는 나이가 되었다. 그는 앞으로도 신해철의 노랫말처럼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것이다. 저녁 6시가 되면 라디오를 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을 것이다. 가끔 늦은 밤 차를 몰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까운 경주에 다녀올 것이다. 간혹 뭔가 텅 빈 것 같아 누군가 필요해도 그는 작업이라는 노동으로 이겨낼 것이다.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고향의 풍경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청바지가 그에겐 늘 새로울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것만 있다면 모든 게 달라질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금정산 아래 부산 풍경이 그에겐 늘 새로운 세계이고, 그것을 청바지로 구현하는 일이 늘 새로운 존재 의식의 구현일 것이다. 최소영은 그렇게 그림을 ‘제조하는’ 작가로 살아갈 것이다. 미술은 이래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이들로부터 거리를 둔 채로. 그 일상의 풍경, 그 잠잠한 풍경.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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