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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글의 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불세출의 저서 『열하일기』 머리말에는 글을 쓰는 것에는 두 가지 길이 있으니, 하나는 은밀하게 감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들춰내어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은밀하게 감춘 책은 『주역』이고, 들춰내어 드러낸 책은 『춘추』라고 했는데, 두 책 모두 신령스럽고 밝은 일에 통달하고 사물의 법칙을 꿰뚫은 책으로 칭송하였다.

그에 따르면 은밀하게 감추는 방법은 이치를 말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어떤 사물에 의탁하여 뜻을 전하는 우언(寓言)이 여기에서 나온다. 우언이란 풍자적이거나 교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를 말한다. 사람이나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짧고 간단한 이야기로 되어 있다. 우언의 핵심은 비유적 수법에 있다. 짧은 이야기가 실은 다른 진실을 비유하거나 작은 사실을 빌어 큰 사실을 비유한다.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교훈과 심각한 주제를 내포하는 셈이다.

우언이 처음부터 문학의 문체로 정착한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민간에서 창작되어 이 사람 저 사람 구비전승 과정을 거쳐 문인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우언이 유행했다고 한다. 『맹자』 『장자』 『한비자』 『여씨춘추(呂氏春秋)』 『전국책(戰國策)』 등에 그 시절 선인들의 우언이 담겨 있다. 현실에서 이야기의 수맥을 끌어오는 중국 산문이 허구적인 이야기인 우언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허물을 들추고 장점을 앞세우다가 스스로도 논리를 감당 못한 ‘모순(矛盾)’ 이야기가 대표적인 우언의 예라고 한다.

그루터기를 지켜보며 토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수주대토(守株待兎)’도 우언의 좋은 사례다. 『한비자(韓非子)』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말로, 한비(韓非)는 요순(堯舜)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라고 주장하여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고집하는 어리석음이나 낡은 관습만을 고집하여 지키고, 새로운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 즉 배에 새겨 놓고 검을 찾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도 그렇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찰금(察今)」에 나오는 우화로, 전국시대에 초(楚)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들고 있던 칼을 물속에 빠뜨렸다. 그는 단검을 꺼내어 칼을 떨어트린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했다. 배가 움직인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어리석은 그는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자 칼자국이 있는 뱃전 밑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이 말은 어리석고 미련하여 융통성이 없거나 시대의 변화를 모르고 옛것만 고집하는 완고한 사람, 그리고 눈앞의 현상만 보고 변통을 부리지 못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고사성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은밀히 숨기는 방법으로 사실을 드러내는 반대편에는 실제의 사적(事跡)을 기록하는 글쓰기 방식이 있다. 사적, 즉 사업의 남은 자취를 기록하는 글쓰기는 훗날 정사(正史)에서 누락된 사적을 기록하는 외전(外傳)이 되었다. 연암은 필시 “들춰진 사실을 가지고 은밀한 뜻을 부여하려 했”을 것으로 적고 있다. 정확한 사실의 역사 또는 기록이나 그 본전(本傳)에 빠진 부분을 따로 적은 전기나 모두 역사임은 두말 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장을 써서 교훈을 남긴 책 가운데 연암이 극찬한 이는 『장자(莊子)』를 지은 장주(莊周)였다. 연암에게 『장자』라는 책은 실제와 가짜가 서로 섞여 있으며, 은밀하게 숨기는 방법과 들추어 까발리는 방법이 번갈아 바뀌면서도 어떤 이치를 잘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연암이 장주를 가리켜 “가히 책을 짓는 작가로서 으뜸”이라고 평가한 까닭이다.

세월이 흘러 연암 또한 으뜸의 작가로 길이 남았다. 1780년 6월 24일(음력) 장백산(長白山)에서 나와 오리[鴨]의 머리처럼 푸르다[綠]는 압록강을 건넜던 연암은 이를 알고 있었을까. 그의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붓끝에 흠뻑 젖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우언과 외전, 그리고 그 둘을 결합한 장주에 이어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자신을 필히 염두에 두었다고 믿는다. 『열하일기』의 머리말을 쓴 것으로 여겨지는 유득공(柳得恭)도 이렇게 적어 두었지 않은가.

“이제야 알겠다! 장자가 지은 외전에는 실제도 있고 거짓도 있지만, 연암씨가 지은 외전에는 실제만 있고 거짓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언을 겸하면서도 끝내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귀결시킨 방법은 서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열하일기 1』, 23쪽, 돌베개, 2009

연행 당시 연암의 나이는 44세였다고 한다. 연행에 참여한 일행들이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소개했을 정도로 그의 학문과 문학은 당대를 대표하는 원숙한 경지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당시의 연암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학문과 문학은 이미 늦었으니, 더 늦기 전에 기행(紀行)이라도 떠나야겠다.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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