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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혼자 일한다는 것

나는 혼자 일한다. 덕분에 따로 출근하지 않는다. 축복이다. 아침이라는 소중한 시간에 번잡한 도시 속으로, 인파 속으로 몸을 욱여넣지 않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렇다고 늦잠은 금물. 잠에서 깨면 하얀색 브라운 탁상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식탁에 씽크패드 노트북을 놓고 ON 버튼을 누른다. 노트북이 켜지는 사이 화장실에 다녀온다. 초기화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구글 크롬을 열어 즐겨찾기에 걸쳐 있는 서점들을 클릭한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나는 매일 아침 도서 주문을 파악해서 ERP로 불리는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그러면 파주에 있는 물류 창고에서 전송된 자료를 확인한다. 그것이 일의 시작이요, 일의 기본이다. 밤사이 내가 만든 책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고마운 사람들. 주문이 넉넉한 날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주문이 빈곤한 날은 마음이 오그라든다. 물론 세상은 만만치 않아서 맘껏 편안한 날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도 나를 초라하게 만들진 않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서점 주문 입력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추가 주문을 기다리며 커피를 준비한다. 집에 더치커피가 있는 날은 간편하다. 더치커피 병뚜껑에 커피를 두 번 반 담아 폴 바셋 머그잔에 따르고, 정수기에서 냉수를 더하면 된다. 날씨에 따라 믹스커피가 당기는 날은 가위로 커피 봉지를 서걱 잘라 물을 붓는다. 뜨겁고, 달달하게. 신선한 원두가 있는 날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커피를 내린다. 전날 저녁 6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는 데 성공한 날에는 커피 대신 검은콩두유를 마신다.

주문 사이사이 그날 할 일을 정리한다. 1인 출판사라고 하지만 혼자서 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세상 어떤 일이 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다행히 나에겐 오랫동안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의 서쪽에서 아이를 키우며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편집자, 대구와 부산에서 책을 만드는 디자이너와 편집자. 이 땅 서쪽과 동쪽에 터를 잡고 프리랜서로 책을 만드는 4명의 협력자가 같이 책을 만든다. 든든한 사람들. 우리는 카카오톡 단체창으로 소통하며 책을 만든다. 그들도 나처럼 집에서 일한다. 지금까지 책을 만들며 나를 포함한 5명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일할 수 있는 훌륭한 세상.

주위를 둘러보면 별의별 직업이 참으로 많다. 회사원, 아나운서, 기자, 프로듀서, 의사, 변호사, 회계사, 자영업, 교사, 공무원, 작가 등 세상은 직군과 직종을 구분한다. 벌어들이는 수입에 따라, 평판에 따라, 좋은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직업은 기본적으로 신성한 것이다. 그 일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면, 그 일로 세상이 모난 곳 없이 운행한다면 좋은 직업이다. 너무나 좋아해서 몰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좋은 직업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일의 기준이다. 내가 출근하지 않는 이유다.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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