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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맛있는 맛없음 - 『무미예찬』

동양화(東洋畵)라는 이름 안에는 풍경이 있다. 그 풍경 안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의 마음을 나눌 것만 같다. 모든 가능한 것들의 출발점이며, 그것들이 서로 소통하는 것. 서구의 대표적인 중국학자로 손꼽히는 프랑수아 줄리앙(Francois Jullien)은 이를 가리켜 ‘담(淡)’이라고 말한다. 두드러진 특성이 없는 것이요, 은미(隱微,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거의 없는)하고 절제된 것이니, 맛으로 치면 짠맛, 쓴맛, 신맛, 단맛 등 특정한 맛에 고착되지 않는 싱거움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무미예찬(無味禮讚)』’이다. 무미(無味), 즉 맛이 없다는 것이 도리어 맛있다는 것이다.

줄리앙이 적은 대로 다양한 문화들 사이를 숨 가쁘게 오가며 간편하게 요점만 정리한 ‘다이제스트’가 일상화된 시대다. 다종다기해 보이지만 결국은 상업적인 욕망에 충실한 채널들이 서로의 배턴을 건네받고 전력 질주한다. 수미쌍관(首尾雙關), 처음과 끝이 서로 관련 있음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누군가 핵심을 짚어주기만을 바란다. 강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나머지 ‘중심’의 싱거움을 음미할 줄 모른다. 재미없음과 맛없음을 견디지 못한다. 맛있는 것을 추구하다보니 맛이 부실해졌고, 재미있는 것을 쫓다보니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비움과 자연스러움, 조용함과 싱거움의 맛을 얘기하는 이 책이 도드라지는 요상한 시절이 되었다.

『무미예찬』은 제목 그대로 시종일관 ‘담백함’의 미학을 읊조린다. 중국과 서구의 사유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서로 다른 입장에서 이해하고, 자연과 세계에 대한 제3의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고민한다. 서구의 근대성에 의해 내면화된 우리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속에 가장 깊이 깃든 진실한 감정을 찾아준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는 중용 혹은 평정, 중립, 균형, 여백, 조화, 초탈, 미완성 등 물과 공기처럼 질리지 않는 감미로운 담의 미학이 정갈하게 깔려 있다. 가장 음미하기 어려운, 그러나 무한히 음미할 수 있는 그 맛없음에서 도(道)가 우러난다는 것을, 동양에 바탕을 둔 예술은 그 무미를 드러내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게 1951년생 프랑스산 철학자의 생각이다. 이 책의 부제가 그의 생각의 깊이를 측량케 한다. 고요함의 멋과 싱거움의 맛, 담백한 중국 문화와 사상의 매혹.

예컨대 당(唐)의 위대한 시인 두보를 살펴보자. 젊은 시절 ‘화려’했던 그의 시는 나이가 들면서 ‘평담’해졌다. 무언가 표현하기를 열망하는 새로운 힘들이 넘쳐나는 격정적인 시기가 지나면, 이런 힘들이 가라앉고 내면화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두보의 시는 노래한다. 삶과 사물의 겉모습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 그것의 ‘근본’에 한층 더 나아가는 감수성, 그 ‘좋은 선한 감정들’에서 올바름(正)이 생성된다는 것을 말년의 두보는 알고 있었다. 무릇 좋은 예술이란 담백함과 평담함으로 칭하는 근본의 맛, 사물의 가장 진정한 뿌리의 맛을 지닌 법이다.

가을이다. 『무미예찬』은 인간의 모든 것이 사계(四季)의 논리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삶과 예술의 완성은 화려하고 충만한 기운이 넘쳐나는 봄과 여름이 아니라, 외적인 풍요로움이 시들고 내적으로 침잠하는 가을과 겨울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 궁극의 때에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손택수, '방심放心')을 맞으며 이 책을 완상(玩賞)하는 건 어떨까. 그 바람 한 줌에서, 그 책 한 구절에서 세상과의 풍부한 연관성을, 당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모든 것이 평담해지는 가을이 아니던가.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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