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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자기계발’이 권하는 ‘숫자 사회’

 

요즘 인스타그램이 아주 피곤해졌다는 누군가의 피드가 스크린에 떠올랐다. ‘인친’에게 요사이 인스타그램은 그야말로 ‘전문가들’ 잔치다. 월 몇 천, 경제적 자유, 브랜딩...... 정작 순수익은 얼마인지, 무엇을 판매하는지 알 수 없는 ‘노하우’ 행렬에 소셜(social)의 본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는 아쉬움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매일매일 극심해지는 불평등, 갈수록 벌어지는 자산 격차, 계약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구별과 차별,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현격한 격차, 과거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사회안전망, 백주대낮에 공공연히 예고되고 실행되는 ‘묻지 마 칼부림’까지...... 국가와 공권력을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숫자’로 검증되는 돈의 양에 사활을 거는 모습은 이해를 넘어 연민을 느끼게 한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국제개발학을 공부하고 여러 나라에서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임의진에게도 지금의 상황은 사뭇 심각한 듯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문제의 틀은 우리와 달라서, 앞에서 나열한 주요 사회적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하긴, 우리가 언제 태평성대를 누렸던가.

『숫자 사회』에서 임의진이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이다. 누군가 비정규직 차별의 시정을 요구하면 “누가 비정규직 하래?”라는 댓글이 버젓이 줄을 잇는 현실에서 그는 인생의 성패를 ‘돈’이라는 ‘숫자’로 가늠하는 한국인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린다. 그에게 지금-여기 대한민국은 숫자에서 파생하는 우월감과 자격지식과 박탈감이 조울과 우울을 오가는 ‘미친’ 공화국이다.

숫자의 광기에 사로잡힌 ‘자본 추앙 사회’는 이른바 ‘가진 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주가 조작으로 장모가 법정 구속되고, 처가의 땅 때문에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이 제기되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최고 권력자, 아들의 학폭 논란에도 뻔뻔히 ‘방송 장악’을 향해 질주하는 우파 정치인,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와 인턴십에서 ‘쉴드’칠 수 없는 오점을 노출한 좌파 교수, 그리고 만 10세의 나이에 서울과학고에 입학한 천재 소년에게 가해진 ‘왕따’까지...... 저마다 모양은 다르지만 ‘숫자’를 향한 그들의 욕망은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

어디 가진 자뿐이랴. 유튜브에는 부동산-주식-코인 고수가 넘쳐나고, 서점에는 돈을 ‘쉽게’ 버는 지름길을 점지해주는 ‘인생 주술서’가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타고난 운명과 본능을 ‘역행’해 경제적 자유와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을 일러주든, 자수성가한 60대의 촌철살인 가르침이든 결국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우리’를 위한 ‘자기계발서’가 인생의 가르침이 되었다.

자기계발! 임의진이 한국형 성공에 얽힌 욕망을 파헤쳤다면, 일본의 사카이 조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자존심이 세워지고 금전적인 성공을 얻을 수 있다는 일본의 ‘혹세무민’을 염려한다. 일본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비즈니스 경험을 쌓은 그에게 자기계발이란 양극화가 심해져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돈을 버는 ‘빈곤 비즈니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간파한 자기계발 비즈니스 공식은 다음과 같다. (1) 저출산 고령화로 쇠퇴하는 사회에서 빈곤에 취약한 사람을 ‘타깃’으로 삼는다. (2) ‘타깃’이 된 사람이 타자에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늘려 자존심을 높여준다. (3) 그렇게 인정 욕구에 메마른 자들을 폐쇄적인 ‘커뮤니티’에 가두고 각종 자기계발 상품을 판매한다. 뭐지? 어디선가 본 듯한 이 기시감이란!

한국의 『숫자 사회』와 일본의 『자기계발은 집어치우고 당장 철학을 시작하라』는 어느새 경제와 사회와 문화의 격차가 좁혀진 동아시아 두 나라에 공통의 과제를 제시한다. 그 숙제를 푸는 열쇳말은 ‘너머’에 있다.

임의진은 믿을 것은 돈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숫자 너머’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자신의 일을 지속하더라도 충분히 인간다운 삶을 사는 사회, 남들보다 돈을 덜 벌어서 조금 덜 누리는 것은 개인의 선택으로 두되 그럼에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하는 사회를 염원한다. 뭐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 비웃음이란!

사카이 조는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계발 너머’ 철학을 권면한다. 철학? 어려워하지 마 No No No~ 자기계발과 철학의 결정적인 차이는 문제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있다는 말에 마음을 여시라. 자기계발 비즈니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답을 찾으라고 꾀어낸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세요, 새벽에 일어나 N잡을 병행하세요, 부동산-주식-코인에 몰두하세요, 포장된 삶으로 온라인에서 ‘좋아요’를 움켜쥐세요...... 그리고 미소를 띄우며 우리를 홀린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철학은 다르다. 철학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인생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고독과 불안과 절망과 마주하는 일, 인생의 답을 자신의 ‘내면 너머’ 세상이라는 ‘외부’에서 찾는 일은 30년 장기침체에서 교훈을 얻은 이웃 나라가 숫자를 기준으로 패배자를 양산하는 우리에게 건네는 우정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이런, 우리라고 가만히 있으랴. 숫자 사회 너머 다양한 삶이 지속 가능한 사회, 각자도생을 강구하는 냉정한 사회 너머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임의진의 ‘살아있는’ 질문을 선사하는 건 어떨까. 자기계발이라는 ‘인생 주술’에 허우적거리는 바다 건너 이웃에게 말이다.

- 돈이 많으면 좋고, 삶을 더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불편해져야 할까? 그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일까?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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