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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아프니까 내 몸이다

가히 위로와 치유의 전성시대다.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이나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자기계발서만이 기를 펴는 시대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은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동시에 추구한다. 공자와 제자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논한 『논어』마저도 이 땅에서는 자기계발서로 화(化)하고 있다. 신묘한 재주다.

고전 읽기 열풍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원래 뛰어난 책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는다. 하지만 “인문고전을 강조하면서도 인문고전을 인용한 일은 거의 없는”(《한겨레》 김두식의 고백 - 이지성 편) 책들에 지갑을 여는 둔한 풍토에서 탁월한 해설가의 지도 편달을 따라야 할 것이다. 강연과 집필로 밥벌이를 하는 고미숙을 찾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고미숙은 우리 출판계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몇 안 되는 고전평론가이다. 『열하일기』 『동의보감』 등 고전을 오늘의 시각으로 풀어헤친 그의 글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본보기로 통한다. ‘연구 공간 수유너머’를 거쳐 본인이 직접 꾸린 연구공동체 ‘감이당(坎以堂)’에서 고전의 텃밭을 일궈 글을 쓰고 세상에 소통시키는 그의 모습은 코뮌(Commune)의 실천이라 불린다. ‘공부란 곧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고미숙의 요즘 관심은 인간의 ‘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손가락 터치로 세상을 접속하는 데 급급한 현대인에게 그는 기억력과 사색을 사용할 것을 요청한다. 원전을 인용하는 것을 품위를 높이기 위한 조잡한 행위로 치부하는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와 달리 그가 삶을 통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고전을 읽고 외워야 한다고 말하는 건 이 때문이다. 고전을 돈과 출세의 지름길로 매도하는, 우리의 생체 회로를 축소시키는 책들 사이에서 그가 ‘다시 읽는’ 고전은 몸 전체가 동의함으로써 얻어낸 인문적 결실이다.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앎의 자원으로 삼는 독서, 삶을 위한 참다운 공부. 자기계발과 생존은 이처럼 엄연히 다르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는 고미숙이 몸으로 지은 책이다. 사십대 초반 몸속에 생긴 작은 종양을 수술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감당한 몸의 성찰을 통해 허준(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1610)의 매력을 발견했다. 왜 내 몸에 이런 병이 생겼나, 왜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는지를 반성한 저자에게 『동의보감』은 질병과 처방을 다루는 임상서가 아닌, 수양과 섭생을 우선시하는 양생서(養生書)였다. 허준은 알고 있었다. 인간의 몸과 우주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과 신체를 따로 간주한 서양 의학이 감정과 뇌를 연결하며 해부학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사람의 신체를 정(精)-기(氣)-신(神)이 접하고 변하는 장소로 본 『동의보감』에서는 감정과 오장육부를 연결시킨다. 심장은 기쁨, 폐는 슬픔, 간은 화를 주관한다. 이렇듯 고미숙의 꼼꼼한 진맥을 통해 15세기의 『동의보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진실된 처방을 내리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공허함을 토로한다. 아프다고 울부짖는다. 이유는 하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통즉불통(通則不痛), 즉 통하면 아프지 않다고 말한다. 몸과 마음, 몸과 몸, 몸과 사회, 몸과 우주가 통하면 만사형통이다. 몸이란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보고(寶庫)이자 습관의 거처다. 몸과 삶과 생각은 결국 하나다. 몸을 바꿔야 운명도 바뀐다. 그러니 아파야 한다. 아파야 비로소 자신을 ‘보게’ 된다. 고전을 자기계발로 삼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기성세대의 레토릭(rhetoric)이 당대를 지배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동의보감』을 읽어야 할, 아니 ‘앓아야’ 할 이유다.

윤동희 | 북노마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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